런던일기/2010년

[life] 밤윷놀이

토닥s 2010. 10. 4. 23:21

하는 일 없이 바쁜 2주였다.  새롭게 파트타임을 시작한 것이 이유기도하고, 소소하게 다니러가야할 곳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오늘부터 바쁜 2주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매주 한 번 다니러가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으나, 런던의 지하철 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되어 4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차를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와야했다.

 

터덜터덜 집 근처 공원을 가로질러 오다 떨어진 밤을 보고 낼름 주웠다.  얼마전부터 나무아래를 걸을 때마다 언제 떨어지나하고 기다렸는데, 지난 주말 동안의 세찬 비에 모두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실 밤은 아닌 것 같다, 밤 종류인 것은 같지만.

 

낼름 주워온 이유는 윷놀이 때문이다.  얼마전에 상인의 홈페이지에서 윷놀이에 관한 글을 보고 '나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서 윷놀이에 관한 글을 찾던 중, 설명해주려면 나도 알아야한다,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윷의 종류에 관한 것이었다.  북부 지방에서는 장윷, 가락윷이라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윷을 사용하고, 남부 지방에서는 밤윷이라고 가락윷보다 짧은 길이의 윷을 사용했단다.  그리고 농민들은 여가를 위해 즉석해서 콩을 이용해 콩윷을 만들기도 했다고.  콩윷, 너무 귀엽지 않은가. 윷놀이 하다가 풀숲에 떨어뜨리면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뭔가를 이용해 윷가락을 만들려고 했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앞 면과 뒷 면이 있는 적당한 길이의 막대면 될 것 같은데, 윷놀이의 아슬아슬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웬지 한 면이 원형이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밤이었는데, 여기서 어딜가서 밤을 구해야할지 막연했다.  어느날 공원의 다람쥐(청솔모)가 이걸 갉아 먹는 걸 보고 '저거다'싶었다.  그런데 내가 나무에 오를 수 없는 관계로 때가 되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지하철 파업으로, 하루가 비어버린 오늘 차를 마시면서 윷놀이 판을 만들었다.  비에 젖은 밤이 마르기를 기다려 원형 면에 XX를 그리기만 하면 준비 끝!

 

얼마전에 알게된 한국인-영국인 부부가 밤이긴 이곳에서 저녁 식사후 도대체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단다.  한국 TV를 보자니 영국인 남편이 답답해하고, 영국 TV를 보자니 한국인 부인이 답답하고.  그래서 이유없이 잘 싸운단다.  다음에 만나면 윷놀이 해라고 알려주어야겠다.

 

지비는 지하철 파업 때문에 5시쯤 퇴근해서 집에 온단다.  밤윷놀이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