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0년

[life] 기분 좋은 주말

토닥s 2010. 9. 6. 07:16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조만간 한국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런 사정이 있어 그간 영국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월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여권을 보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영국에 오면서 받은 비자는 6개월짜리 비자로 입국을 허락하는 비자였고, 그 비자를 받고 들어와서 갱신을 해야했습니다.  폴란드에 가서 몇 가지 서류를 갖추어 지난 2월 서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3월초 서류가 부족하다고 모든 서류가 되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부족하다고 지적한 부분을 갖추어 가능한 빨리 다시 보냈지요.  그리고 3월말 서류를 잘 받았다는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는 여권이 없는 6개월 동안 영국내 체류와 노동을 허가하는 증서를 대신한다는 내용과 함께요.  그리고 덧붙어 6개월 이내 답을 주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문구도 있더군요.  그러고나서는 5개월 동안 아무 소식이 없는것입니다.

 

영국에 들어오자말자 폴란드에 가고, 또 서류를 갖추어 서둘러 비자 갱신을 신청한 이유는 올 가을에 한국에 들어가 결혼식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6개월 안에 해결이 날꺼다'라는 확신이 있었으면 그 기간만 계산해서 9~10월에 결혼준비를 하면 되었겠지만, 요즘 영국의 이민정책 돌아가는 형국이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준비할 수 없는 실정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제가 신청한 비자는 영국내에서 3~6개월 걸린다고 하고, 지비의 친구 커플 경우는 8개월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래저리 답답한 날들이었죠.

 

9월 말이면 편지가 말한 6개월의 합법 체류기간도 끝이 나는지라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려고 이번 주 초에 이민국에 전화를 했습니다.  몇 번의 응답기를 거쳐 겨우 연결이 된 상담원의 말이 "마지막 단계에 있으니 몇 주 안에 연락이 갈꺼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결과는 말 안해주지요.

그 전에는 마냥 막연했는데, '몇 주 안'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그래도 끝이 있긴하구나'라는 생각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토요일인 어제 오전 아침 먹을 준비를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나가보니 서명을 요구하는 편지가 있다고 하더군요.  말이 편지였고, 서류봉투였습니다.  물론 제 이름 앞으로요.  봉투만 봐도 그 서류 봉투가 무엇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봉투를 안고 지비에게 가서 "지금 뜯어볼까 나중에 뜯어볼까"하니 "당장 뜯어보라"고하더군요.  떨리는 마음으로 뜯어보니 아리송한 문구의 편지가 정면에 있었습니다.  비자는 일종의 스폰서인 지비가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유효하고, 지비가 영국을 떠남과 동시에 무효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무효될 경우에 대한 설명만 잔뜩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읽은 지비랑 저는 "그래서 어쨌다는거야"고 여권을 펼쳤습니다.  그 안에 5년간의 체류를 허가하는 비자가 있더군요.  지비랑 저는 한참 동안 "와! 와!"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 스티커 한 장 때문에 그 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한국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국시간으로 부모님 귀가 시간에 맞추어 좋은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동안 비자가 미루어지면 한국행과 결혼식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관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와서 부모님께 그 경우의 수를 말씀드리니 "너희들 편한대로 하되 가능한 결혼식을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올해 안 결혼식이 어려워도 한국에 다녀가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빈곤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11월 경에 한국에 가서 내년 봄 결혼식을 준비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좋은 소식이지요?

 

기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한국의 여기저기 전화를 했는데, 어쩐 일인지 아무도 전화를 안받더군요.  심지어 캐나다에 보거스, 스페인에 TG에게도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전화를 안받더라구요.  영국에 있는 지비의 사촌형마저도.  토요일 이른 오후시간 나가서 볼일보고, 친구와 차마시고 들어와 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나누다 뭔가 기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가까이 사는 실바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미 비자 문제를 알고 있던 실바나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동네 테스코에서 만나 함께 장보고, 저녁을 준비해서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바나와 지비에 비해 저는 너무 '평평'하군요.(_ _ );;

지비가 들고 있는 건 비자를 신청하면서 보냈던 사진입니다.  그간의 관계를 증명하는 첨부서류 여러가지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번 영국에 있는 동안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지비가 한국에 왔을때 찍은 사진들, 그래고 내가 폴란드에 갔을때 찍은 사진들.  그야말로 '증명사진'인 셈이죠.

그렇게 기분 좋은 주말이 이젠 다 끝나가네요.

 

그래서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은, "곧 한국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