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0년

[life] 라마단과 만두

토닥s 2010. 8. 12. 19:30
8월 11일로 이슬람의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여느때 같았으면 라마단이 무엇이고, 그에 대한 인지조차 없이 8월 11일은 그냥 8월의 어느 하루로 지나갔을테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어제가 라마단의 시작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 사는 집은 수단인 남매 핫산과 라잔이 가족의 도움을 받아 구입한 집이다.  핫산은 이곳 의사고 라잔은 이곳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취직을 하였으나 2008년 경기 불황으로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 직업을 잃고 우리가 이집으로 이사올 즈음 부모님이 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름이 무척 더운 관계로 여름나기와 휴가를 겸하여 핫산의 어머니와 라잔, 그리고 또 다른 여형제 알와가 4주간 런던으로 왔다.  핫산은 사실 이 집에 방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집에 살지 않고 캠브리지에 산다.  한 달에 두 번쯤 와서 세탁하고 주말을 보내고 간다.  어쨌든 조용하던 집이 날마다 붐비게 됐다.  하지만 사람이 많을뿐이지 번잡하거나 그렇지는 않다.
식사를 하거나 차를 준비하러 주방에 내려가면 가끔 그 가족과 마주치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의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것이 익숙해져 이제 알와와는 함께 짐(gym)도 가고 산책도 간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참 잘나가는 아라빅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됐다.  사남매가 의사-의사-치과의사-학생이니까.  참고로 알와는 수련과정에 있는 치과의사다.  풍요롭게 자란 사남매지만, 지비도 동의하는 바로, 종교의 율법아래 자란 사람들이라 돈에 집착하지 않고 돈에 관해 여유로운 편이다.  같이 사는 다른 하우스메이트가 집값을 미루거나해도 독촉하는 법이 없다.  정원을 가꾸거나 하는데 사람을 불러 돈을 쓰지만, 식기세척기는 물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하고 쓰지 않는다.  작은 빨래는 손빨래를 한다.  이건 이곳에선 참 드문 일이다.  어쨌든 괜찮은 사람들이다.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이래저리 분주하길래 물었더니 11일부터 라마단이라고 그걸 준비한다나.  그래?하고 말나온 김에 내가 가졌던 아주아주 간단한 질문들을 던졌다.  그 뒤에도 생각날때마다 질문을 던졌다.  질문들에 내가 궁금해 하는게 당연하다면서 키들키들 웃으면서 답을 해주었다.  
그 질문들이란 이런거-,
"왜 하필 돼지를 안먹어?  닭도 있고, 소도 있는데."
"그럼 아라빅 나라엔 동물원에도 돼지가 없어?"
"스카프가 몇개나 되니?"
"정말 라마단 기간에 물을 한모금도 안마셔?"
"그럼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 "라마단하고 올림픽이 겹치면 어떻게 해?"

각각의 질문들의 답은,
첫번째 돼지가 더럽기 때문이란다.  별로 설득력이 없는 답이다, 내겐.  이건 유대인들도 같다.  지비 친구의 여친이 유대인이라 듣고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상극처럼 보이는 두 종교가 얼마나 비슷한지 알면 알수록 놀랍다.  이건 다음에 한 번 따로이.  참고로 심지어 유대인은 해산물도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돼지가 더러워서 안먹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라잔에게도 물었다.  그럼 너희도 해산물 안먹냐고.  이슬람은 해산물은 먹는단다.  맛있는데 왜 안먹냐면서.
두번째,  아라빅 나라엔 돼지가 아예 없단다.  수단의 경우 일부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돼지를 기르고 먹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엔 돼지가 아예 없단다.  자신도 책에서 봤을뿐 존재하지 않는 동물과 같다나.  그래서 내가 물었다.  '돼지'라는 단어가 있기는 하니라고.  있단다.  동물원에도?없냐는 나의 질문에 동물원에도 없는데, 근데 다른 나라라도 동물원엔 돼지는 없지 않냐고.  그런가?
세번째 질문에 관해 알와는 그 질문 무척 많이 들었다고 한다.  스카프도 무척 많다고 한다.
네번째, 라마단 기간 일출-일몰 사이엔 아무것도 먹지않고 마시지 않는다.  금욕을 배우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노동,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좋은 취지지만 예외가 없냐는 질문에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나 모유수유자, 아기는 예외를 허용한다고.  그 외는 예외가 없단다.

그렇다고 이런 질문만 해댔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간의 갈등이나 종교내 시아와 수니에 관한 생각들도 나누었다.

사실 이 가족을 만나기 이전에 나는 이슬람, 무슬림을 제대로 만나본적이 없다.  영어학원에서 한 두명 만날 수 있었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어본적이 없다.  사실 나는 흑인친구도 없다.  이 대목에서 지비가 "너 인종주의자 아냐?"라고까지 했다.  별로 활동 반경이 넓지 않다보니 생겨난 결과일뿐이데.  어쨌든 이번 주말이면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가는 이 가족은 내게 새로운 호기심들을 많이 안겨주었다.  이슬람은 내가 접해본적이 없는 새로운 문화면서 종교였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멍청한 질문들에 늘 '푸하하'웃으면서 답해준 라잔과 알와가 고맙다.  그들과 나눈 종교에 관한 작은 결론은 서로 다른 종교라도 알아두면 좋다는 것.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사실 나조차도 사라(지비의 친구의 여친)과 함께 하는 식사에는 메뉴부터 신경써야한다.  돼지고기와 해산물은 피해야하니까.  알와는 불교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왔다.  그런데 아는 것이 없어 답을 해주지 못했다.


라마단을 준비한다면서 이 가족이 만든게 만두였다.  일전에도 손님을 맞으면서 만두를 만들고 먹어보라고 권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만두를 오븐에 넣고 굽는다는 것.  또 모양을 크로와상처럼 만든다는 것.  속으로 넣는 재료들이 치즈 같은 것들이라는 것.  물론 고기나 채소도 넣는다. 
폴란드에도 만두가 있고, 우리도 만두가 있고, 이슬람에도 만두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원조가 누구였던가를 떠나서 하나의 음식이 각각의 문화에 맞게 변형되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만두는 위대해.( ' ')a
(다시 고개를 드는 만두 예찬론)

어느날은 손님이 와서 준비했다면서 자기들 전통 음식을 맛보라고 내 접시에 덜어주었다.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었다.  당근과 오이를 갈고, 시큼한 그릭 요거트(greek yoghurt)와 소금을 약간 쳐서 섞은 것이었다.  내가 먹으면서 "그릭 요거트 넣었지 않냐고, 그런데 어떻게 너네 전통음식이냐"고 물었다.  알와가 특유의 넉넉한 웃음으로 한참 웃더니 "우리도 요거트 있고 치즈있다"고.  그래, 그렇겠지.( . .);; 

'다름'과 '같음'에 놀라고 신기해하면서, 그렇게 알아가고 중이다.  그것이 이곳에 사는 몇 개 안되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