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3년

[life] 단발

토닥s 2023. 7. 15. 07:50

지난 봄 한국에 가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아이는 이렇게 ‘머리를 자른다’고 표현하면 깜짝 놀란다.  
그때 미용실에 들고간 사진.  미용사분이 웃으실 줄 알았다.

“똑같이 안된다는 거 압니다.  이런 길이로, 느낌으 자르면 좋겠다는 희망입니다”.


작년에도 갔던 언니네 동네에 있는 미용실.  미용사분이 조용히 혼자 운영하시는 곳인데 ‘미용실용 대화’를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고 작년 머리 스타일도 마음에 들어 다시 찾았다.  

안봐도 드라마 - 아이는 내 머리를 보고 저도 하고 싶다할 게 뻔해 내가 먼저하겠다고 했는데, 미용실에 들어가 신이난 아이는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떼를 썼다.  아이가 자르고, 내가 자르고 나니 자기도 나처럼 짧게 자르겠다고 울어서 미용사분이 다시 잘라주셨다.  머리카락이 가벼워서 짧은 머리는 관리가 어려울텐데 하셨지만, 우는 아이 앞에 장사 없다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잘아주었다.  덕분에 지난 6월 댄스 발표회에서 짧은 머리 올림머리하느라 나는 식겁했다.  짧은 머리 발레올림머리 영상을 몇 개나 봤는지 모른다.  그렇게 잘랐던 머리.



늙은 몽실이 스타일이 됐지만 그럭저럭 관리도 편하고, 보는 사람들도 괜찮다고 해서 이제는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  무엇보다 머리 말리는 시간이 짧다.  샴푸도 훨씬 적게 든다.


영국에 돌아와서는 한 동안 이 정도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딱 두 달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머리 말리기도 어렵고, 뒷머리가 뒤집어지기도 해서 큰 마음 먹고 이곳에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아는 지인이 하는 미용실이나, 런던 외곽 한인타운에 있는 미용실은 거리가 멀어 갈 마음을 먹기가 어려워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가보기로 했다.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 3주전 월요일에 일주일치씩 예약이 오픈되는데 거의 한 두 시간만에  일주일치 예약이 완료된다.  2주전 3주 뒤 예약이 오픈 된걸 월요일 아침 9시에 확인하고 점심시간에 다시 가니 예약창이 없어져서 홈페이지 잘못된 줄 알았다.  지나서 보니 예약 완료라 그렇게 된 모양.  일주일 뒤 월요일 아침 9시에 접속하니 남은 예약이 5~6개 밖에 안된다.  아무때나 예약을 하면서 혹시 이 시간보다 하루라도 빨리 예약이 취소된 게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더니 연락이 와서 애초 예약했던 것보다 일주일쯤 빨리 머리를 자를 수 있게 됐다.  어제 점심 시간에 다녀왔다. 도착해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꺼내니 "음..🤔"하면서 머리카락을 이렇게 저렇게 잡아보신다.  이번에도 "똑같이 안된다는 건 압니다.  이 정도 길이와 느낌을 희망할 뿐입니다.  참고만 하세요"라고 말했다.
한참 갸우뚱 하시다가  "음.." 될 것도 같다며 머리를 먼저 감자고(씻자고)하신다.  한국에서는 머리카락을 자른 후 가는데 여기는 머리카락을 먼저 감아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장바꿔 생각해보니 감지않은 다른 사람 머리에 손대는 게 썩 좋지는 않겠다 싶다.  감아서 깨끗해진 머리라야 미용사분 비위가 덜 상하겠다는 생각.


일본미용실답게 머리숱 절반은 '숱쳐버린듯'.  말이 별로 통하지 않으니 별 질문 없어서 나는 편했다.  일본은 '미용실용 대화'가 없나 싶었으나 옆 손님을 보니 그도 아닌듯.  그저 나는 외국인인 그들에게도 외국인일뿐이라 서로 말을하지 않은듯.

그래서 머리는 이렇게 됐다.  사진보다, 생각보다 짧은.  집에서 직접 감고 말려보니 더 짧아진 느낌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원한 여름, 사실은 춥기까지 한 여름이 더 시원해질 것 같다.

학교마치고 멀리서 내 머리를 본 아이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  자기도 머리 자르고 싶다고, 똑같이 하고 싶다고 운다.  오늘도.  가을/겨울에 발레시험이 있으니 안된다고 하니 또 운다.  아이는 긴 머리가 더 이쁜데.. 절대로 발레 올림머리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긴머리가 올림머리가 쉽긴하지만서도.  올림머리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미용사분 말씀처럼 머리결이 가벼워서 관리가 너무나 어렵다.  그냥 기르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