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어느날 불쑥

토닥s 2021. 12. 28. 23:58

직전까지 정신없이 보내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다음날 한 선배의 부고를 접했다.  20대의 일부분을 함께 한 사람이다.  갑작스럽고 허망한 선배의 부고에 같이 한 시간들을 떠올려봤다.  유난히 시니컬하고, 유난히 재미있었던 사람이었다.  

 

선배가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가족차를 몰고 나온 날, 그 차에 나와 다른 한 선배가 동승했다.  다른 누군가도 있었던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 동승했던 다른 선배가 면허를 따고 처음 운전을 하게 됐을 때 다시 "나만 위험에 빠질 순 없잖아"라며 함께 차를 몰고 나타나 웃겼던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선 거의 가장 먼저 운전을 시작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우리를 여러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20대의 일부분을 함께 한 사람이지만 그 선배와 나 사이에 많은 공유지대가 있었을 뿐 우리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스타일이 달랐고, 지향이 달랐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선배가 날 멀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때 그 선배의 연인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또 다른 선배였고(아마 내가 학교 선배 중에 유일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일지도), 그 선배가 가장 아끼던 친구 또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선배였고, 그 선배가 아끼던 후배들 또한 내가 무척 좋아하는 후배들이었다.  그 선배와 나는 스타일과 지향은 다르지만, 같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영국으로 떠나오고 난 뒤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가끔 후배의 근황 속에 등장하는 선배를 보고 가늠한 게 전부였다.  그래도 그런 '믿음'같은 게 있었다.  십년을 훌쩍넘어 어느날 불쑥 만나도 20대의 어느날 바로 다음날처럼 만나 함께 투덜거릴 수 있을 것 같은 믿음.

 

선배를 생각하며 지난 사진들을 찾아봤다.  지금봐도 웃음이 지어지는 20대의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어느날 불쑥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할 말이 없다.  살면서 후회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거기에 하나 더 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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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선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