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keyword] Dignity -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

토닥s 2021. 12. 7. 02:18

아이 학교에서 여름축제나 크리스마스축제가 있을 때면 헌옷/헌교복을 판매한다.  헌교복 판매행사만 따로 할 때도 있다.  물론 이런 판매행사들도 코비드로 한 동안 없었다가 올 가을에 들어서야 다시 재개됐다.  학부모들에게 기증받고, 수익금은 학부모회를 통해서 학교에 기부된다.  헌옷/헌교복이라고 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만 사입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한철용인 아이 여름샌들이나 원피스(드레스)를 2~3파운드주고 사입히기도 했고, 아이에게 작아진 옷을 기부하기도 했다.  영국사람들은 헌옷/헌물건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편이다.  의외로 검소한 편.  재활용품을 팔아 수익금을 남기는 옥스팜Oxfam 같은 자선단체가 왜 영국에서 나왔는지, 영국엔 이런 자선단체가 많다, 짐작되는 부분이다.

 

뜻하지 않게 내가 기부한 아이옷이 누구에게 가는지 알게 된다, 한국에서 사온 상품들이라 구별이 쉽다.  우연히 아이와 같은 학년의 한 부모가 연이어 아이의 옷을 사갔다.  그 부모는 (다시)우연하게 속사정을 좀더 아는 사람이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교육받을 때 실습의 부분으로 지역 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했는데, 거기엔 이민자들을 위한 무료영어교실이 있었다.  그 무료영어교실은 다른 수많은 영어교실과는 다르게 아이를 동반해서 올 수 있는 수업이었고, 내용도 문법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로 이루어졌다.  그 영어교실에 아이의 옷을 연이어 샀던 이 부모가 왔었다.  세 아이가 있는데, 첫번째 아이가 아이와 같은 학년이고 그 아래로 두 아이가 더 있다.  아이가 리셉션(유치원과정)에 있을 때 영국으로 온 이 시리아인 부모는 그 때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수업에 대화상대로 참여해 영국으로 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첫아이는 시리아에서 태어났고, 둘째 아이는 레바논에서, 셋째 아이는 영국에서 출산을 했다.  몇 개월 동안 그 수업에서 그 시리아인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고나니 그냥 아이와 같은 학년의 한 부모/가정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작년에 아이 학년에 있던 다른 아이가 9월 새학기를 시작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새로 교복을 사놓고 전학을 가게되서 그 아이 엄마가 혹시 그 교복을 헌교복 판매행사가 있으면 기부하고 싶다고 내게 물어왔다.  코비드가 시작된 첫해라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냐고 답을 했다.  혹시 줄 사람 없을까 다시 물어와서 아이의 헌옷을 사가던 그 시리아인 부모를 떠올리고 이런 사정(전학)에 헌교복을 받을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문자를 보내보니 고맙게 받겠다고 해서, 전학간 부모에게서 내가 받아 다시 그 시리아인 부모에게 전달해주었다.  내 오지랖도 참..

 

그 뒤로 일년이 흘렀다.  길에서 우연히 그 전학간 아이 엄마를 만났는데, 이번엔 헌교복이 아닌 헌일상복을 받을 사람이 있을까 물어와서 지난 번에 헌교복을 건낸 그 부모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받겠다고하면 이번엔 그 부모의 연락처를 넘길테니 두 사람이 약속을 잡아보라고, 그 엄마도 그러겠다고.

 

이 전학간 아이 엄마가 왜 내게 물어보냐고.  학부모행사와 관련해서 내가 봉사하는 걸 보아오기도 했고, 이 엄마는 내 아이에게 작아진 교복을 혹시나 어린 형제자매가 받아 입겠냐고 학년 방에 올리면 받아가곤 했던 사람이라 이런 자원을 쓰레기통에 넣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상식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부부가 인도인 2/3세대 부부라(?) 아이 교육에 관심도 상당하고, 내가 아시아인이라 나도 그럴꺼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늘 호의를 보여왔던 가족이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서 학교하는 이런저런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족이다.  쉽게 말해 서로 집을 오가는 사이 정도는 아니지만, 그 집 아이가 또 아들이라, 만나면 부모들은 서슴없이 지낸다.

 

다음날 아이를 픽업할 때 마침 그 시리아인 부모를 만나 혹시 지난번처럼 헌옷을 받겠냐고 물었다.  두 집다 첫번째 아이들이 내 아이와 같은 학년이고 그 뒤로 둘째, 셋째가 비슷한 터울로 있다.  작년과는 달리 "우리는 옷이 필요없다", "자선단체에 주던지, 쓰레기통에 버리던지 필요없다", "제안은 고맙다"고 말했다.  영어라서 그렇겠지만, 그 말이 짧고 강했다.  알겠다고 답하고, 나의 전달 방식이 잘못되었는지 혹시 작년에 전달받은 옷들이 너무 낡은 옷들이었는지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

 

페이스북에서 내가 사는 지역 구청을 팔로우하고 있다.  며칠 전 구청에서 올린 글을 보다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구청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노숙하고 있는 누군가가 걱정된다면 그 노숙인의 위치를 앱에 로그하면 구청이 지원하는 자선단체에서 찾아가 안위를 확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있다.  노숙인이 걱정은 되지만, 다가가 말걸기는 어렵고 이후 도와줄 방법도 모르고.  희망하건데, 이 앱에서 노숙인의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가는 자선단체는 대응과 대처방법을 알고 있을테다.  노숙인은 걱정만 앞서는 우리 같은 사람의 시선보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테다.

 

 

좋은 뜻에서 시작했지만 '나의 잘못'은 상대방을 '완전하게 존중하지 않은데'있다.  어쩌면 상대방은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도움이 필요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물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미리 헤아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의 뜻도 존중되어야 한다.  '도움'이라고 해서 주는대로 받는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원하는 방법'이 고려되어 지원되어야 한다.  

 

교육을 받을 때 'dignity'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잘 느낌이 오지 않았다.  사전에는 존경respect과 비슷한 어감으로 풀이되어 그렇냐고 물었더니 그것과는 다르다는 튜터의 답이 돌아왔다.  존경은 그 대상이 남들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어 받는 우대라면, dignity라는 건 그런 뛰어난 부분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인권human right와 가까운 의미냐고 물었더니, 법적인 권리라기보다는 인간이기에 받아야하는 존중respect and recognise정도라고 튜터가 답했다.  누구에게나 다 있는 dignity, 한국어로는 존엄이 가장 가까운 의미인 것 같다.  그 부분을 내가 '완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됐다.  그 느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여기에 남겨둔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일도 어렵고, 영어/언어도 어렵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