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가슴 뛸때(feat.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전태일의 누이들)

토닥s 2021. 11. 16. 02:22

지난 목요일 런던 한국 영화제 상영작인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 전태일의 누이들을 봤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한국영화는 영국의 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들이 가끔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광고를 보는 순간 냉큼 예약했다. 해떨어지면 에너지도 같이 방전되는 사람이라 저녁 시간 상영이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마침내 영화를 보러 가는 날, 6시 20분 상영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이가 하교하자 말자 씻기고 저녁 준비해주고 5시 20분 집을 나섰다. 지하철에 오른 순간 벌써 지쳐버렸다.

솔직히 이제는 웬만한 책을 봐도, 강연을 봐도 그게 자극이 되지 않는다. 제자리 걸음인 경우도 많아서 새로운 정보로 남는 경우도 적다. 문득 돌아보니 그건 책이나 강연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가슴이 뛰지 않는 나.
그래서 이 영화도 또 그런 '제자리 걸음'이 아니겠나, 하지만 이런 영화가 계속 상영되기 위해선 '봐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시내로 갔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 전태일의 누이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5234

미싱타는 여자들: 전태일의 누이들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19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을 타던 소녀들의 이야기다. 또래가 학교에 갈 때 가난으로 공장으로 가야했던 많은 소녀들의 꿈은 일하고,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족을 돕고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소녀들은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배움을 이어가고 싶어 새마을노동교실을 드나들었다. 1977년 9월 9일 새마을노동교실 폐쇄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구속에 맞서 파업(이라기엔 그렇지만)하고 저항하다 구속/수감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료화면을 보고 기억을 불러오는 식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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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당시를 회고하는 여성들이 왜 이렇게 젊나-‘였다. 44년 전 파업과 저항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60세 전후나 될까 싶을 정도로 젊었다. 당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많은 소녀들이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왔다고 생각하니 13세+44년 해봐야 57세. 그렇게 생각하니 여전히 젊은 그녀들이 당연하다. 당시 파업으로 구속수감된 최연소 여성은 14세(1962년 생). 법으로 그녀를 처벌할 수 없었던 공권력은 그 자리에서 그녀의 나이를 1960년생으로 바꾸어버린다. 이 사실은 민주화보상심의 절차에서 드러나게 됐다. 그런 시대를 증언하는 다큐멘터리가 그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을 수 있을까-. 13살이지만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라서 회수권을 살 수도 없었던 이야기는 어떻고.

영화를 보는 동안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많은 기억들,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의 기억에서 나는 이미 잊혀졌겠지만. 그래도 그날 밤만큼은 내 가슴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팔딱팔딱 뛰었다. 다음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다는 건 안비밀-.🐼 체력부터 키워야겠다.

다큐멘터리 전용 상영관 Bertha Doc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