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시월에 만보걷기

토닥s 2021. 11. 8. 01:47

지난 늦봄 친한 친구가 자궁 관련 암으로 수술을 했다.  다행히 (이런 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수술도 잘 되었고, 수술 후 진단한 암도 1기였다고 한다.  방사선 치료와 함께 건강한 삶으로의 복귀가 유일하게 남은 일이라고.  그 친구는 지난 여름 한국에서 만난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6주 동안 우리 가족 외 딱 5명을 만났다).  운동이 권장/처방됐는데, 치료로 기운이 없다는 친구.  문자로 "힘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처지였는데, 운동을 같은 장소에서 하지는 못해도 따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10월에 월-금 만보걷기를 했다.  만보를 걷지 못하면 벌금 천원.🤑  

수술한 친구에게도 활력이 됐음은 물론이고, 함께 하는 다른 친구와 나도 운동하는 계기가 됐다.  도중에 친구네 아이 학교 같은반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자가격리를 해야했고, 또 다른 친구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여행이 있어 그 기간은 뺐다.

나도 덕분에 꾸역꾸역 하루 만보를 걸었다.  만보를 채우지 못한 날은 한밤중에 마트에 우유를 사러 가기도 하고, 그래도 채우지 못한 날은 한국에서 자가격리할 때처럼 집안을 뱅글뱅글 돌아 만보를 채웠다.  작은 집을 뱅글뱅글 돌며 걸으려니 어지럽기까지.

 

두 친구들은 11월에 들어서도 하루 만보걷기를 이어가고 있다.  더러는 만보를 채우지 못할 때도 있지만 격려해가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다.  10월 한 달 만보만 걸은 게 아니라 덕분에 '부지런히' 살았다.  걷는데 시간을 써야하니(하루 1시간 10~20분 정도) 나머지 시간을 아껴서 써야했다.  11월이 시작될 때 수학시험을 치기 위해 등록했는데, 교육기관의 온라인 강의와 모의시험을 다 마무리해야 시험을 신청할 수 있는 구조라 이번주는 하루 5~6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었다.  그래서 나는 한 동안 집에서 자전거 10km를 탔다.

 

작은 응원/격려에서 차원에서 시작된 챌린지였지만, 수술한 친구뿐 아니라 모두에게 활력이 됐다.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 받은 친구들과 매일 짧은 인사라도 메시지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생활의 재미였다.  다음주부터는 나도 다시 만보걷기에 함께 할 생각이다.  걷기 좋은 날씨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