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3288days] 아홉살 인생

토닥s 2021. 9. 20. 17:43

아이의 아홉번째 생일.  (날 더러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의 생일 장소인 큐가든 입장권 예매를 4월 말경에 했다.  그러니까 5개월 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멤버쉽에 손님을 더해, 추가로 입장권을 예매하는 건 지금도 어렵지 않은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Children's Garden 입장권은 3~4개월 전에 예약이 개방되면 바로 예약이 다 되어버려 우리가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 예약을 하려고 기다리다 9월 예약이 가능해진 시점이 되서 예약을 했다.  그때가 4월 말이었다.  애초 아이와 우리를 빼고 친구 다섯, 부모 다섯을 초대하려고 했는데, 아이가 도저히 친구 다섯을 뽑지 못해, 아무리 줄여도 여섯이었다, 며칠 뒤 어린이 입장권을 한 장 더 놀이터 입장권과 함께 예매했다.  그리고 5개월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가 아홉번째 생일을 맞았다.  일주일 내내, "생일이 며칠 남았는지?",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도시락 메뉴는 뭔지?" 그런 것들을 물었다.  생일 전날 너무 설레서 도저히 잠들 수 없다는 아이는 "잠이 안와", "잠이 안와"를 스무번쯤 반복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생일 아침, 나는 초대한 친구들과 부모들과 함께 먹을 도시락을 싸기 위해 6시에 일어났다.  깨우지도 않았는데 나를 따라 일어난 아이.

 

이번 생일에 자전거를 사주려고 했는데, 품목의 특성상 본인이 가서 직접 타보고 크기를 가늠해야 하니 '깜짝 선물'은 어렵겠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대신 빈손으로 생일 아침을 맞게 하기는 그래서, 얼마 전 친구네 아이 생일 선물로 책을 고를 때 아이가 읽어보고 싶다고 반응을 보인 책 한 권을 샀다.  그리고 작년 생일에 선물을 받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자주 가지고 노는 '헤어스타일링 인형(?)'을 샀다.  머리를 무한대로 땋았다, 풀었다, 올렸다, 풀었다 하는 손바닥만한 인형이다.  거기에 지난 여름 한국을 떠나올 때 이모가 누리 생일에 맞춰서 전해달라고 한 금일봉을 전달하였다.  이모 땡큐!

 

 

 

선물을 개봉하고 도시락을 열심히 싸고 있는💦 나를 계속해서 돕고 싶다는 아이.  마음은 고맙지만, 사실 별로 도움은 안되고 일의 속도를 떨어뜨리기만 하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만들어줬다. 

여름 한국에 갔을 때 마트에서 반값 할인하는 아기상어 피크닉 도시락을 사왔다.  그 안에 햄치즈 샌드위치(아이 두명은 치즈만 넣은 샌드위치), 직접 만든 쿠키, 짜먹는 요거트와 젤리, 초코렛 롤리팝, 귤과 포도를 넣었다.  음료는 과일 스무디.

아이들 여섯 챙기면서 정신이 없어서 어른들 도시락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어른들 도시락은 아보카도, 두부, 토마토, 올리브를 넣은 샐러드를 유자+올리브오일과 함께 준비했다.  샐러드는 1인 1도시락을 준비하고 비건 만두와 채소 주먹밥을 따로 준비해서 함께 나눠 먹었다.  아이들 중 한 명은 채식, 한 명은 무슬림이었고, 어른들 중 한 명은 채식, 한 명은 글루텐 프리 식단을 먹는 사람이라 아이들 햄치즈 샌드위치만 빼고 '대략 채식'에 맞추었다.  음식에 별 기대 없는 (영국에 사는 사람들이라) 모두들 즐겁게 먹었다.  그렇게 믿는다.🤪

 

한 가족이 30~40분 늦어서 좀 땀 빠지는 시작을 했지만 기다리는 동안도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놀았다.  정말 많이 소리지르고, 정말 많이 뛰어다니고, 정말 많이 (잔디밭을) 구르고, 정말 많이 나무에 올라갔다.  그래도 '경계'를 넘는 일은 잘 없어서 함께한 부모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간혹 영국 기준에 '지나치게 목소리가 높다' 싶으면 교사를 하고 있는 아이 친구 엄마가 아이들을 학생 다루듯이 챙겨줬기 때문에 우리는 밥 때, 놀 곳 정도만 챙기면 되었다.

 

아이들과 큐가든 식물원과 풀숲(?)에서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놀이터에서 한 시간 놀았다.  그리고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은 뒤 정문앞 큰 연못에서 아이의 새 취미인 '오리 밥주기'로 마무리.  아이들과 부모들을 떠내보내고 우리끼리 즐거운 생일이었다고 물개 박수를 짝짝짝.👏👏👏

 

그 뒤 엄청나게 차가 막히는 도로를 지나 한국 페리카나 치킨에 가서 후라이드, 간장, 양념 치킨을 샀다.  아이의 아홉번째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다는 지비의 사촌형 가족을 맞기 위해.  우리를 내려주고 지비가 예약해둔 아이 생일 케이크를 찾으러 간 사이 아침에 남겨둔 비건 만두를 굽고, 떡볶이를 만들었다.  보통 손님을 맞으면 비빔밥, 파전 같은 것들을 하는데 이번엔 캐주얼하게 '치맥'으로 하겠다고  미리 알렸다.  주중에 먼 한국마트에 가서 한국맥주를 사고, 아이 선물을 사려 쇼핑센터에 가고 이래저래 바쁜 한 주였다.

의외로 가족들이 떡볶이를 좋아했다.  이곳 사람들은 쫄깃한 식감이 익숙하지 않아 떡, 떡볶이, 냉면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올 여름 한국 휴가부터, 교육, 주택, 유럽연합 탈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밤이 깊어서야 사촌형네 가족들이 돌아갔다.  한국에서 사온 마스크팩과 마스크 줄에 열광한 형수님 덕분에 가족 모임도 잘 마무리 했다고 우리끼리 물개 박수를 짝짝짝.👏👏👏

 

그리고 다음날은 코비드 때문에 작년에는 열리지 않아 2년 만에 열리는 폴란드 스카우트 연례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전날 밤과 아침까지 아이를 보내야할지, 말아야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지비는 가고 싶어했지만, 바쁜 주말을 보내면 한 주 동안 피곤해 할 아이가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에 나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코비드가 창궐하고 있으니 집에서 베이킹도 하고 쉬자고 내가 이야기 했지만,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아이.  이유는 스카우트에 대한 열정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다.  그 연례모임은 남동부 잉글랜드에 있는 스카우트들의 모임인데, 모이면 나이별로 나누어 활동을 했다고.  전날 생일이 지났으니 아이는 '아홉살 그룹'에 들어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저녁에 들어보니 올해는 코비드로 나이가 아닌 그룹별로(아이가 속한 학교의 스카우트 그룹) 활동을 했단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 '아홉살'이라니 나도 놀랍다.  내년이면 두자리 숫자 나이.  😱  더 이상 '귀여운' 나이가 아니라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더 많은 걸 공유하고 즐길 수 있을(그러리라 희망하는) 내년도 기다려진다.  그 전에 한글을 좀 잘 읽고 쓰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