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3167days] 휠체어를 탄 남자 그리고 영국아빠

토닥s 2021. 5. 22. 01:22

누리가 4살쯤 됐을 때, 주말 아침 차를 타고 남쪽으로(아마도 강 건너 한국마트로) 가던 길이었다.  신호를 대기하고 있던 우리 옆 인도에 휠체어를 탄 남자와 딱 2~3살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스쿠터를 타고 함께 가고 있었다.  그걸 본 누리는 "아저씨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 그런 말을 '외쳤다'.  나는 옆을 지나는 그 남자가 누리의 말을 들을까 화들짝 놀라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돼!"라고 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누리는 보이는 사실fact를 말했을뿐인데, 나는 그 말이 그 남자를 시선으로 불편하게 할까 놀랐던 것이다.  그때서야 남자와 아이를 본 지비가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애가 넘어지면 아빠가 어떻게 도와줘?"라고 덧붙였다.  그건 지비 생각이다.  여기 사람들은 애가 넘어지면, 달려가 세워주지 않는다.  "괜찮아? Are you OK?"라고 묻는다.  넘어진 애가 생각해서 견딜만하면 혼자 일어나고, 견딜만하지 않으면  뿌앙- 운다.
그때도 지비에게 그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애가 넘어지면 가서 세워주는 건 여기 문화는 아니다.  물론 나도 달려가는 편이었는데, 아이가 자라면서는 달려가려는 나를 의식으로 붙잡아 세운다.  그리고 입에 잘 붙지는 않는 말이지만 머~얼리서 "괜찮아?"하고 묻는다.  마음은 걱정되서 콩닥콩닥하지만서도.
그보다 내가 그 남자와 아이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휠체어를 탔어도 아이와 산책을 나가는 아빠라는 사실이었다.  영국엔 주말아침에 놀이터, 마트를 가보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아빠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런 자세를 좀 배워야 하지 않겠니-라고 지비에게 말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하여간 영국아빠들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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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누리와 누리 친구를 데리고 큐가든에 갔을 때다.  우리는 도시락도 먹고, 놀이터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이들이 입구에 가까운 연못(?)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옆을 휠체어를 탄 남자가 포함된 한 가족이 잠시 섰다 지나갔다.  대충 연령으로 보니 휠체어를 탄 남자, 유모차에 앉은 아이, 아내 그리고 그 부부의 부모일 것 같은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우리가 보던 물고기를 잠시 보던 가족은 다시 갈 길을 가는데, 아이 엄마와 할머니는 빈손이거나 자기 손가방 정도 들었는데, 휠체어를 탄 아이 아빠는 자신의 가방을 매고 자기 휠체어를 굴리면서(?)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밀면서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는 것이었다.  전동 휠체어도 아니었다.  그걸 본 지비와 나는 둘이 얼굴을 마주보고 '헉-'했다.

물론 아이의 엄마나 할머니 머리에 뿔이 있는 악마도 아니었고, 빗자루를 든 마녀도 아니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그 아빠가 장애인 올림픽 챔피언이고 한국식으로 인간극장 같은데 나온 사람이었는지도.  하지만 그날 내 눈에는 너무 자연스러워보이는 그냥 할머니, 엄마 그리고 아빠였다.  우리가, 사회가 생각하는 '아빠', 특히 '장애가 있는 아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사회적인 시스템, 간단하게는 턱 없이 길만 잘 만들어져 있어도 '그 아빠'들이 할 수 있는 게 더 많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아빠'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더 경계boundary를 만든다는 생각.

 

그러고보니 누리네 학교에도 휠체어를 타고 아침마다 아이를 등교시키는 아빠가 있다.  길이 비좁고 턱이 있으니 아빠는 차도로 휠체어를 타고 가고 아이는 인도로 간다.  사람 사는 모습들 자세히만 봐도 배우고, 바꾸고, 생각할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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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큐가든에 갔던 다른 날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