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밥상일기

[20210122] 밥상일기 - 아이 과제 때문에 열심히 해먹은 밥

토닥s 2021. 1. 23. 09:35

이번 한 주는 정말 '열심히' 밥을 해먹었다.  누리의 온라인 학습 과제 중 한 가지가 매일매일 일주일(월-금) 동안 아침, 점심, 저녁, 간식을 기록하고 그 음식들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과일 및 채소 등 음식 그룹을 나누어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 과제를 하려니 밥을 '대충' 해먹을 수가 없었다.  "짜파게티나 먹을까?"하다가도 "Ms 코X가 보고 뭐래면 어떻게?!"하면서 나름 신경써 식단을 바꿔야했다.  그래도 달달구리나 아이스크림을 간식으로 매일 먹었네.🙄

 

오랜만에 구워본 그냥 브라우니.  원대하게, 평소보다 크게 구웠는데 계량이 잘못되었던지, 많이 구웠던지 브라우니가 아니라 초코스펀지 케이크가 되어버렸다.  3일을 먹어야해서 힘들다면 힘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수제비.  쿠키 커터로 수제비 만들어보니 쉽지 않아서 요즘은 반죽을 한 입 크기로 잘라 두었다가 누리랑 같이 펴서 육수에 넣는다.  뜨거운 솥에 아이 손이 닿을까 조마조마 하기는 하지만 주의시키면서 함께 한다.  그것도 배움이라 믿으면서.  사실 혼자 하는 게 훨씬 빠르고 편하지만 누리가 좋아한다.  반죽을 조물조물하는게 아이들 정서상으로도 좋다고는 하지만-, 내 몸 안에 사리 몇 개는 쌓인다.

 

 

 

 

한국사람에게는 밥 아니면 모두 건강식이 아니지만 여기는 밥이 주식이 아니니 직접 만든 음식은 대충 건강식에 넣어준다.  다만 앞서 말한 음식 그룹을 고려해서 골고루 피자 반죽 위에 올려 건강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누리는 토마토 페이스트에 햄, 치즈만 올리고 우리는 버섯, 새우, 올리브 잔뜩 올려 먹었다.  채소 및 과일 그룹이 없는 것 같아서 후식으로 사과 한쪽씩.

 

 

 

 

우리들의 식단 기록을 보니 탄수화물이 너무 많고, 단백질이 적은 것 같아서 돼지고기를 준비해서 먹었다.  우리가 주로 먹는 단백질이라곤 우유, 치즈가 대부분이라.

 

 

 

 

크리스마스에 먹고 한 동안 먹지 않은 폴란드식 만두 피로기.  감자와 코티즈 치즈가 속재료로 들어있는 만두다.  누리가 좋아해서 가끔 사먹는데(절대로 만들어 먹지 않아요) 봉쇄로 폴란드 식료품점에 갈 일이 없어서 동네 마트에서 샀다.  폴란드 음식은 영국마트 어디서나 살 수 있다.  물론 요즘은 신라면도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것도 같다.  크리스마스 때 산 양배추절임 절반이 묵은지처럼 삭았길래 다시 비고스를 만들어봤다.  폴란드식 샐러드는 살 수가 없어서 그냥 양배추샐러드coleslaw를 샀는데.  먹으면서 비고스를 위해서 양배추도 사는데 이 양배추샐러드도 그냥 마요네즈 넣고 만들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배추 한 통은 £0.45고 양배추샐러드는 아주 작은 컨테이너가 £0.80.  양배추샐러드coleslaw는 어떻게 만드느지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뭔가 손으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소세지빵을 만들었다.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었다.  반죽을 한참 하면서, '이렇게 만들꺼면 그냥 빵 사서 소세지 넣어먹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갓 구운 빵을 먹어보니 또 '역시 갓 구운 빵은 다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대표 폴란드 음식도 먹었으니 대표 한국 음식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만들어본 비빔밥.  자주는 안만들지만, 누리에게도 채소를 먹일 수 있어 가끔 해먹는다.

 

 

 

 

그래도 매끼 신경쓰는 건 어려워서 간단하게 한 끼.  물론 이 간단한 한 끼도 나는 30여 분은 투자해야 한다.  조리 할 때마다 맛이 다르고, 조리 시간마저 긴 전형적인 초보라서.

달걀을 삶아서 으깨어 마요네즈와 버무려 크로와상 안에 넣었다.  누리는 마요네즈 달걀만 넣어주고 우리는 치즈와 두껍게 썬 햄을 넣었다.  이 햄은 영국마트 폴란드 음식 코너에서 산 '노르딕 스타일 베이컨'.😂  음식 그룹을 생각해서 바나나 하나씩과 같이 먹었다.

 

 

 

 

뭘 먹든 준비하는 건 대부분 내 몫이지만 결정하는 과정은 누리와 함께 했다.  "Ms 코X가 뭐라고 할까?!" 하며 나름 균형 식단을 반영하려고 애쓰고, 달달구리를 간식으로 먹은 저녁엔 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물론 그래도 다음 날 계속해서 먹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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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페이스북에서 본 글 - 부산(고리)원전에 엔지니어로 온 영국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70년대 영국 노스햄튼셔 자란 글쓴이.

 

한국인은 커녕 아시아인도 흔하지 않은 동네에서 자란 글쓴이는 월-금은 평범한 영국식으로 먹었지만 주말만은 김치, 불고기 한국음식을 먹었다고.  그 한국 음식은 형제에게 차별적인 시선과 대우를 보상받는 양분이었고, 고향을 떠나온 그의 어머니에게는 이민의 시간을 견디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21/jan/17/korean-cooking-my-mother-and-me?fbclid=IwAR0MnMNX6cit-ZdF5xw_LZvxOA5H2nqIMZNU6voy5p0gR6KaxiOCSM36Kr8

Korean cooking, my mother and me

Growing up in rural England, Rob Allison was repeatedly told he didn’t fit in. Time in the kitchen with his mum - eating kimchi, bulgogi, pickled daikon - helped him understand his roots and her life

www.theguardian.com

아시아가 Covid의 출발지라는 이유 때문에 한동안 불편한 시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전에도 후에도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영국 동네 마트에서도 신라면을 살 수 있고, 아주 가깝지는 않아도 차로 한 20분 가면 한국 식당도 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한국에 호감이 있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다.  심지어 누리 반 친구 한 엄마는 이 봉쇄가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이 한국 식당에 가는 일이라고 한다.😅  누리는 다른 외모 때문에 주눅들지 않는다.  물론 런던이라는 특별한 도시가 더 그렇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시간이 변하고 세월이 변해도 9천 km 거리만큼은 여전하다.  Covid로 그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