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keyword] 마스크

토닥s 2020. 9. 4. 22:07

Covid-19과 함께 시민들에게 필수품이 된 마스크.  적어도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왜 유럽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지, 정부는 쓰라고 강제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일단 여기서는 전염병 같은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 쓰는 게 마스크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Covid-19 초기 마스크를 썼던 아시아인들에 대한 따돌림 행동이 많았다.  지금은 그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더 나아진 것도 아니다. 

누리반 학부모 그룹대화방에서 마스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병원에서 일하는(메디컬 스태프는 아니다) 한 엄마는 마스크는 제대로 썼을 때 질병 확산을 막아주는 것이지,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하는데 쓸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럽 사람들의 인식이 딱 그 정도다.  그 엄마 정도의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마스크를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은 마스크가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믿으며(?) 쓴다.

마스크가 질병 확산 방지에 의미가 있으면 그 누군가가 걸렸을지도 모르는 질병에 대비해 누구나 써야 한다는, 그런 와중에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이곳 사람들이 했더라면 유럽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정부가 의지가 있었다면 마스크 쓰기를 강제했을 것이다.  정부가 의지가 있는지, 정보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확실한 건 마스크가 없다. 

이제 한국엔 마스크 공급이 충분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공장이 없는 이곳에서는 모든 마스크가 중국에서 온다.  갭이나 베네통 같은 의류 회사들이 천 마스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지만, 스스로가 밝히듯 의료적 기능이 전혀 없는 천 마스크일뿐이다.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천 마스크나 한국에서 덴탈마스크라고 불리는 마스크를 사서 쓴다.  가끔 통기성도 좋으며 방수도 되는(비말방지 기능) 천 마스크를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가격이 월등히 비싸다.  이런 환경에서 마스크를 강제하면 마스크 대란이 생길테고, 그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자포자기식으로 아예 마스크를 거부할 것 같다.  마스크를 강제하게 되면 이곳의 시스템상 저소득층이나 우선보호대상(장애인, 노약자)에게 부분적으로 무상지급이 요구 될 수 있는데 정부는 예산도 없지만 마스크도 없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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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의 등교를 앞두고 늘 궁금했던 마스크의 앞뒷면을 알기 위해 폭풍검색했다.  일전에 언니가 마스크의 시접을 보고 안팎을 살피라고 해서 우리는 그렇게 써왔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친구집에 가는데 지하철 역에서 한 어른신이 다가와 마스크의 앞뒤를 알려달라고 했다.  자식들이 사다줬는데, 늘 앞뒤가 헛갈린다 하시면서.  언니의 정보를 바탕으로 알려드렸다.  그런데 그 어르신의 마스크는 일명 덴탈 마스크였는데, 시접을 보고 안팎을 가리면 파란색 쪽이 얼굴로 향하게 되는 거였다.  '아 틀린 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보니 파란색 쪽이 얼굴로 향하게 쓴 사람도 있었고, 입체형이라 위아래를 틀리게 구분하기 어려운 마스크도 코모양을 잡아주는 철심을 아래로 쓰고 계신 분도 있었다.  코를 내놓고 계신 어르신들은 허다했다.  

친구집에 도착해서 오면서 생긴 일화를 이야기했더니, 친구도 '주름이 아래로 그리고 마스크 끈이 바깥쪽으로'라고 말하면서도 본인도 긴가민가.  회사마다 다른가보다 하고 접어두었다.  그런데 여기서 부득부득 우겨서 쓰는 마스크, 제대로 알고 쓰자 싶어서 검색을 했다.

비말차단 마스크든, KF인증이 없는 일회용 마스크든 방수 기능이 있어야 비말을 차단할 수 있다고 한다(언니의 정보의 따르면).  마스크의 구조가 3중인데 그 중 바깥면은 비말차단을 위해 방수원단이, 안쪽면은 입김 등을 흡수하는 원단이 쓰인다고.  그래서 누리가 쓴 마스크를 뜯어서 안팎 원단에 물을 부어봤더니, 기존 바깥이라 생각했던 쪽은 방수가 되고 안이라 생각했던 쪽은 그대로 물이 흘러내렸다.  언니의 '시접론'에 따라 착용한 게 맞았다.  그런데 그렇게 쓰면 누리 마스크는 주름이 위로 향하게 되어 일반적인 '주름방향론'에서는 벗어난다.  앞으로 언니의 '시접론'을 계속 따르겠지만 일일이 방수원단과 흡수원단을 확인해보는 게 최선이다.

'주름뱡향론'은 주름이 위로 향하게 되면 그 골로 바이러스를 담고 다니게 된다고 하는데, 입체형 마스크를 떠올려보면 그 마스크들은 모두 마스크 위에 바이러스를 올리고 다니게 형국이다.  양방향주름 마스크도 있으니 딱히 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 없고, 한방향주름 마스크도 착용법에 따르면 '귀에 걸고- 지지대를 코모양에 맞춘 다음 - 위아래로 당겨 주름을 펴서 공간을 만들어줘야한다'고 하니 더욱 주름방향이 의미가 없다.

 

실험을 해보기 전에 검색해도 잘 알 수가 없어서 마스크 제조사에 전화를 했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지금 누리가 쓰고 있는 마스크는 언니가 구매해줬는데 불량이 하나도 없었고 괜찮아 보여서 구매를 한다면 그 제품으로 사고 싶었다.  알고보니 회사가 부모님댁 근처 공단에 있는 작은 회사였다.  마스크 제조사에서도 마스크 주름이 아래로 흐르게 쓰라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제품의 포장지에 나온 마스크를 보면 또 주름이 위로 향하고 있다.  모두 믿음이 가지 않아서 다쓴 마스크를 뜯어서 실험을 해봤다.  그리고 어이가 없어서 혼자서 웃었다.

앞으로 좀 이름 있는 회사 제품을 사면 나을까 생각도 했지만, 딱히 더 나을꺼란 보장도 없다.  자기 철학과 신념(?)대로 한 번 마스크를 쓰고, 그 뒤 뜯어서 실험해보는 게 최선이다.  물론 그러다 안팎 모두 방수가 안되는 원단이라면 실망이 커지겠지만.

 

+

 

누리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마스크가 필요하지 않다고 쓰면서, 그래도 마스크를 쓰겠다면 착용에 관한 책임은 부모가 지고 여분의 마스크를 여러 장 보내라고 메일로 알려왔다.  지비는 그 글을 보면서 "쓰지 말란 말이네?"라고 반응했지만, 나는 "여분?  얼마든지 보내줄께"했다.  한국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각자가 소지할 수 있는 최대치를 챙겨왔다.  누리 150장, 나 150장 그리고 외국인인 지비 30장.  그리고 그 전에 부모님이 두 번 보내주신 마스크가 있어서 대충 세어보니 400장 가까이 있다.  지비는 지금도, 앞으로도 출근을 할 것 같지 않으니 누리 마스크를 좀더 보충해두면 될 것 같다.

 

다행히 누리는 마스크를 쓰는게 불편하지는 않다고 한다.  한국에서 30~36도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아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누리에게 언제든지 네가 불편하면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땐 벗으라고도.  내가 알기로 누리는 다니는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인데, 당분간 누리는 유일한 한국인이면서 유일한 마스크 쓴 아이가 될 것 같다.  누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