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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일기/2020년

[life] 발코니 프로젝트

by 토닥s 2020. 6. 1.

올해 봄이 되면 발코니에 거는 형식의 화분을 사서 꾸며보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었다.  새로운 봄이 오면 사려고 가을 겨울 부지런히 화분도 고르고, 우리집 발코니에 맞는지 미리 문의도 해보고 그랬다.  그런데 봄보다 Covid-19이 먼저 왔다.  발코니 프로젝트와 Covid-19이 무슨 상관인가 싶은데 식료품을 구입하는 마트만큼이나 바쁜 곳이 DIY와 가든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그 동안 하지 못한 집수리와 봄맞이 가든정리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봄이오면 사려고 했던 화분은 아무리 찾아도 재고가 없고, 화분 흙값은 몇 배로 뛰었다.  DIY와 가든 용품을 파는 매장이 essential로 분류되어 문을 열기는 했지만, 직원수 부족으로 몇 군데 거점만 문을 열었다.  우리집과 가까운 매장은 문을 닫았다.  내가 원하는 화분을 파는 온라인상점에 재고알람을 신청해두고 기다렸다.  4월 어느날 재고알람을 받고 구입했는데, 이 Covid-19의 영향으로 배송도 한 열흘은 걸린 것 같다.  받아서 신나게 발코니에 걸어두고 흙을 담아뒀다.  동네 가든센터가 문을 여니마니해서 화분에 심을 식물도 없이 흙만 있는 빈화분으로 며칠 보냈는데 그 며칠 동안 강풍이 불었다.  강품이 지나고보니 흙이 많이 날라갔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가든센터 문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있는 씨앗 털어서 심었다.  꽃심을 화분에 열무를 심었다.  뭐라도 자라라 하면서.



올라간 기온탓에 일주일만에 쑥 자란 열무.



영국의 통행금지가 생기기 전 DIY용품점에 가서 사온 딸기 모종.  그때가 3월 중반이었는데 5월 말이 다되서 딸기 몇개 자랐다.  딸기 모종하나가 2파운드 정도인데, 두 개 심었더니 딸기가 서너개 달렸다.  차라리 그 돈으로 딸기 사먹는게 더 남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발코니 가꾸기와 누리의 자연학습(?)의 일환이니까-.



누리가 좋아해서 매년 심었던 토마토.  올해는 심지 않으려고했는데 모종 하나 사서 심었다.   영국에선 날씨가 흐려 토마토 성장속도가 너무 느리다.  9월이나 되어야 토마토를 맛볼 수 있는데, 그때되면 다시 날씨가 추워진다.  그래서 한 반년 키워서 토마토 몇 개 먹을 수 있다.  더군다나 누리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우리는 여름에 한국을 가니 한 여름에 돌봐줄 수도 없다.  알아서 자라라는 마음으로 샀는데 병에 걸렸는지 잘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작년에 한국서 사온 꽈리고추와 모듬상추.  꽈리고추를 심은 건 3월말이었는데 저 만큼 자랐다.  꽈리고추가 겨울을 견딘다면 내년에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다.  모듬상추는 누리가 털털털 제맘대로 씨았을 뿌렸는데 잘 자랐다.  그런데 그 속에서 진드기도 잘 자라고 있다.  한 번 성한 잎들만 골라서 먹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약을 쳐 진드기를 없애고 관상용으로나 키워야 할 것 같다.  다시 텅빈 화분으로 두면 또 흙이 날라가 버릴테니.



다른 화분에 심었던 열무(나물).  한 번 잘라서 비빔밤 만들어먹었다.  며칠 한 눈 판 사이 쑥 자라 꽃을 피웠다.  꽃 핀 식물은 안먹는다고 들은 것도 같고, 옆 상추 화분에서 진드기가 이사간듯해서 같이 약 쳐 관상용으로나 키워야 할 것 같다.

아는 분이 한국에서 받은 봉선화를 챙겨주셔서 애지중지 키웠는데 싹도 안난다.  같은 분이 작년에 꽃씨도 보내주셨는데, 작년에 그 꽃씨를 애지중지 키웠는데 싹도 안났다.  올해 그 꽃씨를 흙날림 방지용으로 털털 털어넣고 심었는데 조금 자라고 있다.  문제는 마음을 비우고 털털 털어넣어서 자라봐야 무슨 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봉선화도 내년에 마음을 비우고 털털 털어넣으면 자라려나.

어쨌든 올해 발코니 프로젝트는 좀 망한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뭘 심어야하는데 Covid-19으로 때를 놓친 것 같다는 핑계.  내년에 새 마음 새 뜻으로 잘해봐야지.  그때는 Covid-19이 썩 물렀기를 바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