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life] 시간여행

토닥s 2020. 5. 5. 07:07

2000년대 초반에 시작한 홈페이지가 있었다.  글쓰기 연습하고 필요한 자료를 저장할 용도였는데, 그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홈페이지엔 내가 있었다.  불안하지만 가끔은 행복했던 내가.



영국에 온 뒤로 그 홈페이지를 손댈 여력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라인플랫폼들도 많이 바뀌었고 이제 홈페이지 같은 건 유명인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도 찾지 않는 올드 플랫폼이 됐다.  그 홈페이지 안에서 HTML 뒤져가며, 철따라 사진 바꿔가며, 친구들과 댓글로 투닥 거렸다.  나의 20대가 그 안에 멈춰있어서, 나의 오래된 지식으로는 어쩌지도 못하면서 매년 도메인과 호스팅을 유지하면서 10년을 보내버렸다.  매년  5월 초 갱신 기간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갱신하고 다시 일년 동안 잊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30대도 건너뛰고 40대가 시작된지도 한참이다.  그래서 더 이상 갱신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부지런히 옮겨 담았다.  전부는 아니지만 한 60% 정도는 옮겨 담은 것 같다.  뭔가 한 번에 옮겨 담는 방법이 있을텐데, 내가 가진 지식이 하잘 것 없어서 손이 고생했다.  하지만, 덕분에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공개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 비공개로 두었다가 실명 같은 것들을 손봐서 몰래 공개할 생각이다. 


홈페이지에 야심차게 여러 페이지를 두었는데 그 중 하나는 내 사진들만 올렸다.  나를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 사진을 찍어준 사람들, 함께 한 시간과 장소가 담겨 있다.  신기하게도 사진 속엔 나 밖에 없는데 누가 어디서 찍어줬는지 거의 대부분 기억이 났다.  사진 30% 정도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30% 정도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그리고 30% 정도는 술집에 앉아 있었다.  10% 정도는 일하는 사진.



아쉽게도 나의 20대를 함께한, 그 사진들을 찍어준 대부분의 사람들과 연락이 하지 않고 산다.  한국인의 메신저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지금도 참 특이한 사람들.  그런데 그런 느낌은 있다.  내가 불쑥 전화를 걸어도, 그렇게 불쑥 만나도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툴툴 거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입장이 달라지고, 나이가 달라졌으니 그건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기를 희망해본다.


+


그 시간만큼이나 그리운 사람들, 보고 싶다.

(전화 좀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