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2770days] 초등학교 2학년의 이상한 봄

토닥s 2020. 4. 19. 09:26

휴교 일주일 전 누리가 받아온 영어과제는 주말에 관해 편지형식으로 쓰는 것이었다.  어떤 주말을 보냈는지.  Covid-19 때문에 벌써 특별한 일정 없이 집콕하며 보내던 때라 누리는 편지에 쓸 내용을 찾는 걸 어려워했다.  그래서 주말 동안 우리가 뭘 했는지 꼽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걸 바탕으로 편지를 썼다.



누리가 편지에 쓴 내용은 그랬다.  


선생님께,

나의 주말에 관해 쓰려고 해요.  토요일, 폴란드 주말학교는 취소됐고, 마트에 갔더니 화장실 휴지는 하나도 없고 어떤 선반은 텅텅 비어 있었어요.  그 다음 홈데코 상점으로 가서 하얀색 튤립, 딸기 모종 그리고 토마토 모종을 샀어요.  집에 와서 아빠와 재미있는 게임들을 했어요.

일요일, 집에서 보내며 숙제들을 했어요.  폴란드 주말학교에 갔으면 해요.  폴란드 주말학교에 가게 될까요?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다음에 폴란드 주말학교가 취소되지 않기를 바래요.


마침 이동통제와 휴교가 임박했던 때라 사재기가 극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아이의 언어로 담긴 그 상황이 요즘말로 '웃프게' 담긴 누리의 숙제.  먼 훗날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일까.  그때쯤 우리는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Covid-19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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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교를 하고 구글클라스룸을 통해 매일 5~6개의 과제를 받았다.  어떤 것은 2~3분 정도 동영상을 보거나, 퀴즈를 푸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몇 시간을 들여 마무리 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그 중에 하나 - 현 상황(Covid-19)과 관련해 영국 총리에게 편지 쓰기.


과제 내용은 그랬다.


지금 우리는 일주일 내내 집에서 보내고,

학교는 문을 닫았고, 선생님과는 온라인으로 소통한다.

우리는 친구들이나 친척들과도 만날 수 없다.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우리의 '일상'이 너무 달라졌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한 다음,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현재 총리도 병에 걸렸음)에게 편지를 써보자.



선생님이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지 질문을 던져줬다.  그 질문에 누리의 생각을 같이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그 생각들로 편지를 썼다.



종이에 쓴 편지를 구글클라스룸 독스에 올리는 것으로 이 과제는 마무리 됐다.  누리는 편지 쓸 때 느꼈던 어려움을, 그 과정이 지나면 컴퓨터 앞에서 타이핑을 해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뎠다.  이 편지 타이핑하는데 한 시간.  답답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누리는 타이핑을 즐겼고 나도 그 시간을 다른 일에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누리가 총리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그랬다.


총리께,

나는 나의 일상에 관해 쓰려고 해요.  지금 영국의 모든 학교는 닫혔어요.  그래서 나와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안전하고 좋지만, 과제를 집에서 책과 컴퓨터로 하는 건 매우 달라요.  집에만 있는 건 좋지 않아요, 우리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요.  나는 많은 숙제를 해요, 왜냐면 학교에 갈 수 없기 때문이예요.  그것도 좋지만, 나는 학교, 친구 그리고 선생님이 그리워요.  그리고 공원에 가던 것도 그리워요.

언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나요?  언제 Covid-19은 멈출까요?

당신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들었어요.  나아지길 바래요.  손 씻는 걸 잊지 마세요.



나는 이 편지를 실제 총리에게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누리가 펄쩍 뛰었다.  누리 몰래 보낼까 하다가 누리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영국 총리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았다.  지금은 총리실 소속 어디 맨션에서 휴양 중이다.


지금은 부활절 방학 중이고 다음주면 다시 개학이다.  하지만 휴교하였으니 집에서 공부하게 된다.  부활절 방학 동안 우리는 점심을 먹고 치우고 나면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 가서 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프리즈비를 던지거나, 캐치볼을 하거나, 공을 찼다.  그 공원은 누리 학교 바로 앞의 공원으로 이맘 때면 하교하고 늘 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하교 후 하루 종일 학교에서 같이한 친구들과 다시 뛰어놀던 놀이터는 굳게 닫혔다.  지근지근 밟아주는 아이들이 없으니 몇 주만에 토끼풀이 껑충 자랐고, 민들레가 엄청 많이 피었다.  밖에서 텅빈 놀이터를 볼 때 내가 벌 받는 느낌이다.  마음이 너무 무겁다.  날씨는 왜 이렇게 청명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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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방학이 되고 구글클라스룸에 매일 같이 올라오던 과제에서 해방되는가 싶었는데 첫주 10개의 과제를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올려놓으신 선생님.  그 다음주도 10개의 과제를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올리셨다.  선생님, 너무해.

부활절 방학 과제는 누리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했다.  그 중에 한 가지 - 창 밖 구경하기.

과제 설명 동영상을 보니 (미국의) 한 교사가 Covid-19으로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며, 이런 걸 해보자고 친구랑 이야기한데서 시작했다고.  창 밖을 보면서 지나가는 차는 몇 대인지, 색깔은 어떤 차였는지, 구름은 어떤 모양인지, 지나가는 사람은 몇 명인지 같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게 교육과정으로 보면 수학 내 정보처리/재현(data representation)이라는 내용인데, 이 과제를 해보자니 좀 '웃프다'.  이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없네 - 웃프다.  그래도 누리랑 한 동안 발코니에 붙어 우리 집 앞 건물들을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그림도 그리고 나름 재미있는 과제였다.  이런 과제 - 창 박 구경하기는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왜 밖에 나가지 않고 창틀에 붙어 이런 과제를 했던가 뒷날 생각하면 다시 웃프겠지.



우리 집 앞 건물의 발코니 수를 세어보고, 발코니에 나무가 있는지, 화분이 있는지, 꽃화분이 있는지 세어보았다.  주차된 차들의 색깔도 나눠보려고 했는데 은색, 회색, 짙은 회색, 푸른빛 도는 회색 등 너무 애매한 색깔들이 많아서 포기했다.  그 뒤에 한 과제 중에 재미있게 한 것도 있는데 이어서 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