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2696days] 요즘 누리

토닥s 2020. 2. 6. 08:40

여기서 초등학교 2학년인 누리는 요즘 요리와 베이킹을 무척 좋아한다.  예전에도 좋아하기는 했지만, 요즘은 그저 반죽 섞기에 만족하지 않고 도마 위에 올려진 채소를 칼로 자르고 싶어한다.  내가 위험하다면 자기가 보는 유아채널 프로그램의 아이들도 칼을 쓴다고 반박한다.  Cbeebies에 World Kitchen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영국에 살고 있는 각국의 아이들이(여기서 태어나긴 했지만 부모가 외국인) 자기 문화의 음식을 요리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먹는다.  이탈리아 아이는 피자를 굽고, 몽골리아 아이는 만두를 만드는 식.  누리는 아이들을 초대해서 우동을 만들고 싶다기에 - 우동은 일본꺼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요즘 누리의 최애 음식인 미역국을 끓인단다.  태어나서 미역 본적도, 먹어본적도 없는 친구들이 기겁하겠네.

날씨 때문에, 그리고 저조한 누리(와 나의) 컨디션 때문에 요즘은 주말을 집에서 보낸다.  나가 놀 공원도 마땅하지 않고.  그래서 아이의 빈 시간을 채워줄 활동(?)으로 먹거리를 종종 만드는데, 지난 일요일은 오전에는 김치를 만들었고 오후에는 프렛젤 pretzel을 만들었다.  인근 쇼핑몰 한 가운데 프렛젤 가게가 있는데 오며가며 시식해본 누리가 너무 좋아한다.  볼일 있을 때 들러 가끔 하나씩 사다주곤 하는데, 문득 만들어볼까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소다수에 끓이는 것 빼고는 쉬워보여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문제의 소다수에 데치는 과정은 생략하고.



나는 프렛젤이 당연히 도넛츠처럼 튀기는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오븐에 굽는 것이었다.  만들어서 소다수에 데친다음 오븐에 굽는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구워봤다.  통밀 빵가루를 썼으니 질감이 사먹는 것과 달리 거칠다는 것은 감안하겠는데, 빵이 너무 짰다.  게다가 일까지 많아서 다시는 만들지 않는 것으로 혼자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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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리는 컴퓨터/인터넷/게임에 대한 관심도 급상승.  초등학교 1년부터 ICT를 하는데, 이게 아이를 자극했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여기저기 광고가 넘쳐나지만.  ICT에서 했던 프로그램들 - 포닉스와 수학 그리고 코딩을 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주로 그 주에 바쁜 일이 있어 학교에서 ICT를 하지 못했을 때 15분 정도 하게 해주는데 이 때는 아이의 눈빛이 변한다.  해달라고 말할 때는 눈에 하트 뿅뿅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땐 아이가 컴퓨터로 빨려들어갈 기세고, 그만하라고 할 때는 눈에 분노와 원망이 가득하다.  그걸 보면서 다음엔 어떻게 눈에서 하트를 발사해도 절대로 하게 해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하긴 요몇주는 그것도 잊었다 - 엉덩이 탐정 덕분에.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 지비의 사촌형네 놀러 갔을 때 사촌언니의 아이패드로 해본 픽셀 아트를 잊지 못하고 종이에 그려본 누리.



역시 누리의 반 친구 가족과 주말에 차를 마시러 갔는데, 까페에 앉자 말자 그 집 아빠가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줬다.  둘이 나란히 앉아 했던 게임을 잊지 못하고 그려본 누리.  어떤 게임인지 이름도 몰라서 찾아주지도 못하지만 화면 디테일을 기억하고 종이에 그려서 지비에게 해보라는 누리.


우리는 이런 경험을 가능한 늦추려고 한다.  어릴 때 노출이 되면 통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애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빨려 들어갈 기세다.  누리 학교 학부모 워크샵에서 한 부모가 자기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하는 ICT를 이유로 아이가 컴퓨터 사용을 요구한다고(우리랑 똑같은 레파토리).  과연 허용해야 하는지, 하면 얼마나 해야하는지 질문을 했다.  선생의 대답이 그랬다.  이 아이들은 대학 들어갈 때 어쩌면 입학시험을 컴퓨터로 치게 될지도 모른다고(영국에선 절대 불가능이라고 본다).  그러니 기본적 활용은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세대는 이렇게 휴식하니, 하루 15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미디어와 친해지니 신체활동량이 무척 낮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봄여름엔 방과후 활동이 없는 날 학교를 마치고 아이를 늘 놀이터에 데리고 간다.  그런데 가장 많은 학년이 초등학교 1학년.  그 이후가 되면 아이들이 방과후 활동(주로 수영, 체조, 발레, 축구)을 하느라 놀이터에서 놀 시간이 잘 없다.  그런데 그 아이들 70~80퍼센트는 여자아이들이다.  여자아이들은 하루 종일 친구들과 학교에 있었어도 다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데, 남자아이들은 집에 얼른 가서 타블렛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활동량이 많다는 말은 옛말이다.  적어도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때는 또 확실히 남녀의 활동량이 역전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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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종이에 그린 픽셀 아트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지인들은 부족함이 아이를 더 자극한다고 덕담하지만 나로서는 좀 짠한 마음이 드는 것도 솔직한 마음.  우리는 타블렛 컴퓨터는 안사는 것이기도 하고, 못사는 것이기도 하니까.  몇 년 전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옆에 앉은 테이블에 앉은 가족이 아이가 셋이었다.  그 가족을 보고 우리는 두 가지에 놀랐다.  여기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들려준 모습에 놀랐다.  덕분에 부부가 아이 셋 데리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놀란 것은 아이패드가 한 집에 셋!?  우리는 하나도 없는데.


하여간 그렇게 컴퓨터에 목말라하는 누리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Dan(천막)을 만드는 것이다.  손님용 메트리스를 세우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 씌어 공간을 만들고 스탠드로 안을 밝힌다.  그 안에서 보드 게임도 하고, 간식도 먹고 그런 걸 너무 좋아한다.  이런걸 보면 정말 페이스북에서 덕담한 지인들의 말이 맞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도 된다.  뭐, 이런 것도 얼마나 가겠냐만은.  요즘 누리 또래 아이들이 가장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이폰, 아이패드라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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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리는 이렇다고 주절주절.  등짝을 때려주고 싶은 순간이 (아주 자주) 생기기도 하고, 더 크지 말고 요대로 조금만 더 있어주렴 하는 생각이 (아주 가끔) 들기도 하고.  나만 그런 건 아닐꺼라고 (알아서) 위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