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2354days] 학부모면담 Parent's evening

토닥s 2019. 3. 1. 09:48
오늘 누리 학교 마치고 학부모면담을 갔다.  여기서는 주로 방과 후에 진행하고 Parent's evening이라고 한다.

학교에 따라 다른지 모르겠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꺼라 생각하지만, 누리네 학교는 학년 중 두 번의 학부모면담을 진행한다.  가을학기 중간 방학이 끝나고, 봄학기 중간 방학이 끝나고 그렇게 두 번 진행한다.  유치원격인 리센셥에서의 두 번의 면담과 1학년에서의 두 번의 면담을 되짚어보면 학년 중 첫번째 면담은 새학년 적응과 아이의 (학습과 발달)상태를 들을 수 있었고, 두번째 면담은 첫번째 면담 뒤 성취/발전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누리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지인이 그런 조언을 해줬다.  학부모면담에 가면 좋은 이야기만 하니 그런데 녹지말고(?) 질문을 많이 준비해가라고.  그때는 그야말로 누리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라 그 말의 느낌을 알 수 없었다.  경험해보니 정말 좋은 말만한다.  리셉션 학부모면담에 두 번 참여한 뒤 더 이상은 가지 않는 지비와 나는 그런 걸 두고 Britishness라고 이야기나눴다.  영국 사람들의 전형/정형.

영국 사람들은 면전에선 좋은 말만한다.

어떤 사람들,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영국 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좋은 말만 하는 건 겉과 속이 다른데서 오는 게 아니라 언어에서 오는 습관이자 문화 같다.

영국에 처음와서 놀라고,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영국인들과 혹은 인종차별의 테두리를 넘어 사람들의 전형성에 대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영국인들의 인사습관이다.

영국인들은 매일 "How are you doing?"하고 첫인사를 건낸다.  인사를 받은 사람은 "I am fine. Thank you. And you?"하고 답하고 되물으면 첫인사를 건낸 사람은 "I am fine. Thank you."하고 답한다.  내가 놀란 점은 나는 이런 대화가 영어교과서에만 존재하는줄 알았는데 정말 매일 같이 이 대화를 나눈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영어학원 선생이 그렇게 물으면 나는 그날그날 기분과 상황에 따라 "I am fine/good/so so/no good"하고 답했는데 so so/no good이라고 대답하면 무슨 일이냐고 아주 걱정스럽게 되물어오곤했다.  이 사람들에게 No good은 bad다.  기분이 별로면 Good이라고 하는 정도.

이쯤에서 학교시절에 배운 영어를 떠올려보면 영어에서는 단정적으로 I don't like라는 표현보다는 간접적으로 I don't think I like라는 표현을 쓴다고.  또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 '좋아하다' Like의 반댓말로 dislike/hate로 외웠는데 여기선 그런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혐오'에 가까운 느낌이다.  미국은 어떤지 모르지만 영국에선 혹은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그런 언어습관이 몸에 배여 좋게, 순화된 표현으로 말하는 것일뿐 겉과 속이 다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몸에 배인 습관이냐면 - 예전에 지비의 직장상사가 다른 도시에 있는 사무실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 I am fine. Thank you.로 시작해서 일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통화상태가 나빠 전화연결이 끊어졌다고.  10초도 안되서 상대방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다시 How are you doing?하고 첫말을 내뱉는 직장상사의 목소리를 듣고 지비 혼자서 폭소할뻔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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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학부모면담으로 돌아가서-.  누리가 집에서는 나이보다 어리게 행동하는 반면 학교에서는 큰 키만큼이나 자기 할 몫 이상을 잘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말만 둥글둥글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아주 디테일하다.  1학년에서 성취해야하는 어휘 수가 있는데, 보통 말하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측정하는 것 같다, 누리는 그 수준에 이미 도달했고 수학에 있어서는 구구단 2단과 10단을 할 수 있고 - 그런 식이었다.
성격적으로 여전히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틀려도 경쟁적으로 손들고 말하는 편인데 누리는 수학문제를 풀고 답에 도달해도 선생님이 묻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고.  부모도 그런 사람이니 그런 성격이 어디서 왔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누리에 대한 걱정/고민/질문이 없냐기에 누리가 가족과의 게임에서도 지면 감정을 못다스리고 운다고 했더니, 누리는 승부욕이나 경쟁심이 강한 아이라기보다는 성취도가 높은 편이여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아 그런 것이니 더 실패를 경험하도록 할 수 밖에 없다고 조언해주었다.

요즘 아이들의 발달을 관찰/기록하는 과정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기록 방법에 '객관적으로 & 성취를 중심으로 표현'한다고 되어 있었다.  오늘 면담의 내용이 얼마 전 읽은 발달의 관찰과 기록 방법에 딱 맞았다.  예를 들어 아직 아이가 구구단 3단까지 못한다가 아니라 2단과 10단을 '할 수 있다'는 표현이 그렇고 아이의 어휘가 몇 개 단어 이상을 '쓸 수 있다'는 표현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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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방식 vs 폴란드 방식 vs 한국 방식

지난 1월엔 누리의 폴란드주말학교 학부모면담이 있었다.  면담에 갔던 지비는 주말학교 교사가 이야기한 누리가 할 수 없는 부분, (여기서도 역시)실패를 두려워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야기가 주(요)였던 점을 생각하면, 영국의 방식과 폴란드의 방식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말학교 교사들은 전문교사들이 아니지만.  폴란드의 방식은 우리가 자라면서 관통했던 방식과 참 닮았다.  채찍질 스타일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지금의 한국은 우리가 겪었던 방식과는 다르다고 믿고 싶다.
영국의 (공)교육은 한국에서 실패한 교육의 대명사로 종종 등장하고, 영국에서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 싱가포르 같은 동아시아의 방식이 괜찮아 보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 사회'에서 온 사람으로써 "그래도 이 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 하잖아.  그럼 됐지."라고 답해준다.
학업성취 뭐 그런 건 모르겠고, 누리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영국 교육은 그럭저럭 괜찮은 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중고등학교 학교와 교육은 좀 다른 측면이 있지만.  적어도 초등교육만큼은 지역을 떠나 스탠다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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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The Jolly Postman을 읽고 그린 그림.

학부모면담은 10여 분만에 끝났는데 누리가 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학, 과학, 프로젝트 노트를 모두 보여주고 싶어해서 그걸 보느라 교실 밖에 한 30분 더 머물렀다.  예전에 한 한국인 부모는 아이가 영국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 놀기만 하는 것 같다라고 썼는데 오늘 한 학기 반 동안 한 것들을 보니 나는 교사와 보조교사가 한없이 존경스러워졌다.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했을까..하면서.  정말 대단 & 존경 퐁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