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밥상일기

[20181031] 숙주나물

토닥s 2018. 11. 2. 01:25
아직 '시월의 마지막 밤'을 추억할 연배가 되지 못한 탓에 하루 종일 아이 뒷바라지 종종종. 

누리를 학교에 넣어놓고 장을 보고, 저녁을 미리 준비했다.  아이를 하교 시간보다 일찍 데려와 9월 초에 수술한 귀를 체크하러 갔다가 발레를 마치고 오면 할로윈 밤나들이를 하러 가기 전 저녁을 준비해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그리고 누리가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 - 주먹밥을 만들어 싸놓고 반찬으로 먹을 샐러드, 숙주나물을 준비했다.  숙주나물은 요즘 누리가 좋아하는 메뉴 1~2위를 다툰다.

그 쉽다는 숙주나물은 몇 번을 이래 해보고 저래 해봐도 맛이 없어서 인터넷에 조리 방법을 찾아봤다. 몇 개를 정독하고 일관된 점을 추려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조리법과 비율을 몇 번의 시도 끝에 찾아냈고,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쯤 해먹는 반찬이다.  반찬이 없는 우리 밥상이건만.

다듬은 숙주를 데치는 건 1~3분인데 다듬는 건 20분이다.  여기 사람들은 숙주를 다듬어야 한다는 걸 상상도 못할테다.  나도 그랬다.  숙주의 꼬리가 질기다고 투정한 누리 덕에 다듬어보니 꼬리를 떼어내 다듬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  꼬리를 다듬은 숙주(콩나물도 그럴테지)는 사각사각 맛과 기분이 두 배가 된다.  왜 나는 이 기초적인 것도 몰랐을까 꼬리를 다듬으며 생각해보니 신문지 펼쳐놓고 콩나물이나 숙주나물 꼬리를 다듬는 풍경은 텔레비전에서만 봤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상이다.  일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오래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부모님이 일터에서 만들어오시니 과정을 볼 일도, 경험할 일도 적었다.  그러니 금새 데쳐 고소하게 버무리는 나물반찬은 흔하지 않은 반찬이었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언니들이 "너만 안했지 우린 했거든"하고 궐기할지도 모르겠다. 

누리 입맛에, 내 입맛에 맞게 만들고 나니 이 간단한 걸 왜 나만 몰랐나 싶다.  어느 지인의 말씀처럼 나는 정말 요리/조리 센스 꽝인 것인가.

요즘들어 느끼는 것은 음식도, 조리도 모두 문화자본이라는 것.   특히나 척박한 영국의 음식문화, 저소득층의 식생활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더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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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숙주나물을 다듬으며 했던 자투리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