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

[day14] 피로 사회

토닥s 2017. 4. 13. 23:22
서울행 아침 10시 기차를 도저히 못탈 것 같아 11시로 바꾸었는데 버스+지하철에서 눈썹을 휘날려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  왜 이렇게 밖에 안될까 발을 동동 굴렀더니 역에 기차 출발 40분 전에 도착하는 이변이 생겼다.  덕분에 세월호 시민분향소에 꽃 한 송이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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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하철 1호선 종점에서 한참 가 부산역에 닿았다.  다행히 종점에서 타서 누리는 임신부/유아동반 스티커가 붙은 자리에, 나는 그 옆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앉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했다.  출입구 바로 옆 자리였는데 지하철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누리가 앉은 자리가 비었다고 생각하는지 시선을 옮겼다가 실망한 눈빛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봐야했다.  남녀노소가 없었다.
누리와 나란히 앉으면서 노약자가 오면 누리를 앉히고 내가 일어설 생각이었다.  예전 같으면 누리를 안고 앉았을텐데 허리가 아파서 골반과 허리에 무리가 가는 걸 피히고 있다.  그래서 지하철에 오르는 이들을 일일이 살피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4명이 마주 앉은 노약자석으로 직행했다.  그 외 딱히 혹은 겉보기에는 내가 자리를 양보해야 할만한 사람이 보이지는 않았는데, 내가 못봤을 수도, 누리 자리로 달려 들었다 실망한 표정들을 보면서 '왜?'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모두들 피곤하다'는 자체결론을 내렸다. 

런던 같은 대도시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평일 낮 지하철은 한산한 편이다.  도로도 그렇다.  심지어 도로는 주말이 더 복잡하다.  주말엔 도심진입세가 해제되기 때문이다.  내가 부산역을 향해 가던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 지나간 시간이었는데도 지하철이 무척 혼잡했다.  서울에 와서도 마찬가지. 
점심시간을 넘겨 서울에 도착해 다시 남산터널과 한남대교를 지나며 낮시간 정체를 보고 놀랐다.  평일 그 시간에 차를 끌고 이동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니.  런던에서 왔는데 시골쥐가 된 기분.  사실 (광역권)도시 크기나 인구는 서울이 훨씬 클 것 같다.  이런 곳에 살면 사람들이 피로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늦은 퇴근과 술자리, 밤새도록 반복하는 시끄러운 TV프로그램, 잠시도 휴식을 주지 않는 휴대전화 이용패턴만이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게 아니라 '도시 생김새' 그 자체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이 도시는 사람들에 의해서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가 도시를 만들고,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인생관 마저도 좌지우지 한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피곤할 수 밖에 없겠다.

경제적 부담 속에 사는 건 런던도 마찬가지지만 런던엔 숨구멍이 있다.  그러니 인종차별적 어려움이 더해진 환경 속에서도 버텨지는 것인데, 도시에 사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버티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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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마음으로 먼길을 왔지만 반겨주는 친구들과 친구들의 미니미들로 들뜬 하루였다.
미세먼지 속에서 바쁠 내일을 위해 이만 꿈나라로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