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book]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토닥s 2016. 11. 29. 20:27

가와타 후미코(2016).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안해룡·김해경 옮김.  바다출판사.


일본의 저널리스트가 모으고 쓴 재일본 조선여성들의 이야기다.


일본강제점령기 때 가족을 찾아 혹은 결혼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경우도 있고, 일본에서 조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우도 있고, 일본군강제위안부 경우도 있고, 히로시마 원자력폭탄 피해자도 있으며, 일본에서 차별을 겪다 북한으로 가족을 떠나 보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런 가족사를 가지고 일본에 정착한 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겪고 다시 이민자가 된 경우도 있다.  전쟁을 겪고, 차별을 경험한 조선여성들의 이야기.


너무나 강하게 다가오는 책의 제목은 일본고등법원에서 위안부 판결에서 패소된 후 - 피해 사실은 인정했지만 청구는 기각되었다 - 송신도 할머니가 부른 노래의 한구절이다.  재판에 진 사람이 저런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일본 조선여성들의 강인한 삶을 대신해서 보여준 셈이다.


이런 책을 읽어도 쓰임이 없을 처지지만 여전히 생애사와 구술사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설/문학 못지 않은 울림이 있어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  책 이미지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해보니 여러 언론에는 소개가 되었지만,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되려 안타까운 마음이다.


+


엄마도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여차'했으면 이 책 속의 여성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이것은 가능성이지만, 일본에 결혼하며 건너가 아이키우고 살았던 외할머니의 삶은 책 속 여성들의 삶과 같았을터.  그 시대를 살았을 여성들에게는 너무 흔해서 특이하지 않을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우리는 너무 무심했다.  그 흔했던 삶들이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가고 귀한 삶과 이야기가 되었을 즈음에야 귀를 기울여 듣게 되서 안타깝고 미안하고 그렇다.

우리만해도 엄마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것만 알았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가족관계서류엔 엄마의 출생지가 일본 고베라고 엄연히 나오는데도 말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겨우 몇 해전에야 어디인지 여쭤보고 알게 됐다.  일본에서 어떻게 가족을 꾸리셨는지도.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


MB정부와 함께 한국을 떠났다 돌아가니 NGO에서 일하는 한 선배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무 많은 건들이 터져서 정신이 없다고.  모두 대응해낼 여력이 없다고.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많은 이슈들이 매일매일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단돈 10억엔 치유금(배상금이라는 이름일 경우 죄를 인정하는 격이라 일본에선 치유금이라고 한다고)으로 일본군강제위안부 건을 덮으려는데 여러 사람들이 화를 낸게 몇 달전인데 지금은 이것도 잊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이, 이 일본군강제위안부 건도 바로 잡을 수 있는 정부를 세울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를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 순간에도 시간은 째깍째깍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