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coolture] 빙 Bing

토닥s 2016. 5. 14. 00:42
누리가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용을 봐서도 Cbeebies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프로그램 셋 중 하나인 빙Bing.
나머지 둘은 처음으로 소개했던 Something Special이라는 프로그램과 Show me Show me라는 프로그램이다.  Show me Show me는 한국에서 '하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중이다.



검은 토끼 빙이 주인공이다.  플롭이라는 인형처럼 생긴 아빠(남자 성인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 밖에도 절친 코끼리 술라, 술라 엄마(여자 성인 목소리) 엠마, 팬더 판도, 판도 엄마 패젯, 사촌 흰 토끼 코코, 코코 동생 찰리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집안에서, 가든에서,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에피소드들이 일상과 너무 닮아 놀라울 정도다.  영국 아이들의 일상은 집, 가든, 놀이터에서 벌어진다.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2~4세 아이들의 일상과 앞으로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일들을 배우기도 했다.  절친과 다투기도 하고, 씨리얼을 테이블에 쏟기도 하고, 과자를 굽다 태우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들이다.

Ep. bye bye box

- 빙이 어느날 풍선을 발견했다.  빙에게 풍선이란 빵빵하고 동그란 모양인데 바람이 빠져 홀쭉해진 풍선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풍선인지를 물었고, 플롭은 바람을 불어넣어주어 풍선임을 보여줬다.  신이난 빙은 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터뜨리고 만다.  속상해하는 빙에게 플롭이 소중한 풍선을 바이바이 박스 bye bye box에 넣어두자고 한다.
바이바이 박스는 빙에게 한 때 소중했던 장난감들이지만 부서져서 그 쓰임이 다한 장난감들을 담아두는 박스다.  그리고 그 박스 겉면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삐뚤삐뚤한 솜씨로 빙이 그려놓은 장난감들의 그림이 있다.
- 이 에피소드를 보는 내가 뭉클했다.  부서진 것들과의 기억을 소중하게 남겨줄 수 있는 여유를 우리는 가지지 못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은 너무 많아서 무엇이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누리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기억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간다는 사실에 놀란다.  벌써 일년 반도 전에 간 체인 호텔 간판을 볼 때마다 누리는 이모와 갔던 여행을 자기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가끔 2~3년 된 누리 사진을 보고 셋이 앉아 낄낄 댈때가 있는데, 사진에 나온 소품들을 누리는 달려가 찾아온다.
작은 것에 고마워하고, 추억을 가질 수 있는 아이로 만드는 건 부모의 몫이다.  아이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렵지 않은 이 일을(그냥 모으기만 하면 되는데) 잘 못하고 산다.

Ep. Butterfly

- 플레이 그룹에서 아이들이 모여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 방으로 나비가 날아들었다.  아이들은 환호하지만 바로 사라져버린 나비.  엠마는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용해 아이들과 나비를 만든다.  만든 나비를 말리기 위해 밖으로 몰려나간 사이 나비가 빙이 혼자 있는 방으로 날아들었다.  빙은 그 나비를 밖으로 보내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두 손 안에 담아 밖으로 나간다.
친구들 앞에서 두 손을 펼쳐보이니 나비가 꼼짝을 않는다.  아이들이 나비가 죽었다고, 빙이 나비를 죽였다고 흐느낀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빙 역시 흐느낀다.  플롭의 제안으로 나비가 좋아할 것 같은 꽃 밭에 묻어주기로 한다.  아이들은 꽃 밭에 말리기 위해 펼쳐둔 데칼코마니 나비 때문에 죽은 나비가 외롭지 않을꺼라고 좋아한다.
- 일전에 어린이집에서 한 엄마가 같이 살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셔 바빴다고 이야기했다.  중동아시아쪽 엄마였는데 아이가 충격을 받을까봐 할머니는 중동아시아 그 어디 집으로 가셨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3살 짜리 아이에게 할머니의 부재를 설명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저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게 그런 숙제가 주어진다고 해도 잘 해낼 자신은 없지만.

누리와 함께 자라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어린시절을 자주 떠올려 본다.  비교하기에 큰 세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는 과정이며 시간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 속에서 자란 우리들이라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 때 도움을 주는 것이 이런 프로그램들이다.  누리와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이다.  가끔 누리의 이해되지 않은 행동들을 빙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뒤늦게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또 누리의 발달이 보통의 수준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의 일상이 담긴 프로그램을 보면서 안도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많이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한 1년 반 전에 런칭 된 이후 유아시간대의 황금시간대인 9시 경에 끊임없이 편성되는 걸로봐서도 우리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인기 프로그램인듯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일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국과 이곳의 아이들의 일상이 다르니까. 한국의 유아 프로그램도 모험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에서 벗어나 유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들로 다가가보는 건 좋은 시도일듯.  물론 이미 존재하고 있고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