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keyword] 고객 in UK

토닥s 2016. 2. 26. 00:09
지난 월요일 누리와 실내 놀이터에 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끔 가는 리테일 파크(쇼핑상가) 내 M&S에서 운영하는 까페에 갔다.  약간 늦은 점심이라 늘 붐비는 까페도 한산했다.   누리는 크로와상에 크림치즈를 발라 먹겠다 했고,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려고 마음 먹었다.  계산대로 향해 줄을 섰다. 

누리가 쟁반을 자기가 든다고 하고, 나는 조심해라 하고 둘이서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앞에선 할아버지가 "that's very nice(멋지네)" 어쩌고 그런다.  그 와중에 누리가 잡은 쟁반을 나도 잡느라 정신 없이 계산대 앞에 서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직원이 부분 정전으로 계산과 뜨거운 음료 주문이 안된다며 우리가 들고 있는 음식은 오늘 무료라는 것이다.  "seriously?(진짜로)"라고 내가 재차 물으니 "it's compulsory service(규정)"라며 뜨거운 음료가 안되니 무료로 냉장고 음료도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that's very nice"라고 덧붙일 수 밖에 없었다.  누리와 나눠 먹을 오렌지 쥬스를 골라드니 컵도 준다.

웬지 복권 맞은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누리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때 어떤 중년 여성이 까페로 들어서 쟁반을 집으려고 하자 뜨거운 음료 주문이 안된다며 돌려보내고 그 이후 까페 입구를 닫았다.  정전은 5분 만에 해결이 됐다.   다시 까페 입구가 열리고 손님도 다시 맞았다.

사실 직원이 compulsory service라고 말했을 때 그 단어를 알지 못했지만 맥락적으로 이해했다.  정전이 된 바로 그 순간에 바로 직원이 손님에게 그 상황에 맞는 대응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손님이 왕이다'라는 식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고객'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서 유행하는 '호갱님'이 아니라.

사실 이 M&S와 얽힌 이야기는 또 있다.  몇 년 전에 뭔가를 집어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우리가 봤던 가격 보다 더 많이 나왔다.  이상해서 가격을 물어봤다.  직원이 가서 확인해본 결과 상품진열이 잘못되어 있었다.  우리도 상품과 가격표의 상품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있었다.  그런데 이 M&S에서는 자기들 잘못이라며 상품 아래 있는 낮은 가격으로 조정해서 계산하도록 도와주었다.  책임있는 직원이 와서 수기로 입력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때도 우리는 역시 복권을 맞은 기분이었는데, 그 회사의 문화에 감동받았다.  한국과 폴란드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실제로 영국에 있는 다른 브랜드의 마트에서도 일어나기 어려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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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누리의 체육수업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섰다.  그런데 어느 버스 이용자가 붙여 놓은 작은 메모를 발견했다.  한 노선의 서비스에 개탄하며(이 버스는 자주 안온다) '모두가 불만접수하면 개선될지도 모르니, 런던교통공단에 항의하자'는 것이었다.

작은 메모라고 했지만, 이걸 만든 사람은 짧은 문구로 하고 싶은 내용을 정리하고 불만처인 교통공단의 전화번호, 온라인주소, QR코드까지 담아 손바닥만한 크기로 인쇄하여 비에 젖지 않도록 투명 테이프로 전체를 덮어 붙었다.  정성이 담겼다.

개인적으로 이 노선은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노선이 너무 길어, 상습 정체 구간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이용자의 노력으로 '개선될지도' 모른다.

이용자들의 이런 적극적인 태도들이 모여 이 나라에는 '고객'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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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고객은 갑이 아니다.  갑이라면 을과 동등하게 물물과 재화/서비스를 교환하는 관계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좀더 공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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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2 - 저는 M&S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