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life] 내일도 벌서러 갑니다.

토닥s 2015. 7. 18. 07:24
지난 달 런던에서 열리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침묵 시위에 가기 위해 서둘러 점심을 먹고 있었다. 지비가 물었다. "이 침묵 시위는 언제 끝이 나는지". "참 좋은 질문"이라 답해주고 한국 일본대사관 앞에서 20여 년 넘게 열리고 있는 수요집회에 관해서 말해주었다. 지비의 표정은 그야말로 '헉!'이었다.

나는 수요집회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고,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침묵시위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모여서 이런 걸 더 이상 요구할 일이 없어질만큼 일본군강제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가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세월호 사고의 진상이 밝혀져 가족 잃은 분들이 더 억울함과 서운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난 달 침묵시위가 열렸던 날은 지비가 시간 외 근무를 위해 인터넷을 통한 업무가 늘 가능한 환경에 있어야해서, 집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누리를 지비에게 남겨두고 혼자 갔다.
보통은 시간이 되면 다함께 시내에 가서 점심도 먹고 시간도 보내고 침묵시위가 열리는 곳에 들러 인사를 하고 온다. 누리랑 가면 두 시간을 온전히 채워 한 곳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 있으면 못가고, 비 오면 못가고, 가더라도 아이에게 침묵시위가 열리는 광장 여기저기를 끌려다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계세요" 인사만 두 번 하고 온다.
지비가 집에서 누리를 보기로 했으니 혼자서 두 시간을 채울 수 있겠다며 갔는데, 지비가 던진 질문에 마음이 참 무거웠다.


마음도 무거운데 "세월호는 교통사고인데 왜 대통령이 책임지냐"라는 아주 (들어)익숙한 주장을 가진 호리한 청소년이 등장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을 땐 "흐흐" 웃음이 삐져나왔다.
앞에서는 대중추수 교황은 창녀라며 아이리쉬 음악에 맞춰 어떤 할아버지가 어설픈 아이리쉬 탭을 추고 있었다. 계속 "허허" 웃었다.

얼굴은 웃어도 내가 벌서는 기분이란 걸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어른이 이 모양이라 세상이 이 모양이라면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 벌서는 건 참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기꺼이 벌서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내일도 벌서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