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life]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1

토닥s 2015. 4. 25. 00:55
누리와 수영장에 갔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카페에 들렸다. 평일 점심 까페엔 의외로 혼자 애를 데리고 나와 간단히 요기하는 엄마들이 많다. 그 마음 팍팍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은 간단히 요기하는 노인들. 가만히 둘러보니 그렇다.

수영 뒤 허겁지겁 토스트를 먹던 누리는 우리 옆에 휠체어에 탄 할머니가 자리를 잡는 순간 딱 굳어버렸다. 할머니가 아무리 웃어줘도, 누리더러 이쁘다고 말을 걸어와도 누리가 먹던 점심을 그만 먹던 순간부터 나는 겉으로만 웃고 속은 타들어갔다. 애 점심을 먹여야는데. 어쩌다보니 또 그 할머니가 딱 누리 정면이네.

결국은 누리가 보던 책을 앞에 세워줬다. "우린 숨기 놀이 하는거야"하면서. 그러니 그 책 뒤에 머리만 숨겨서 토스트를 먹기 시작하는 누리. 간간히 눈만 들어 할머니를 확인한다.

그 순간에도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 처음엔 누리 나이를 물으시길래 그냥 두 살 반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참 크고 이쁘다고. 고맙다하고 누리를 챙기는데 몇 분 뒤 다시 누리가 몇 살이냐 물으신다. 속으로 못들으셨나 하고 다시 두 살 반이라고 답해드렸다.

그리고 다시 몇 분 뒤에 또 몇 살이냐고 물으신다. 세 번째에 '아..'하고 생각이 들었고 다시 두 살 반이라고 답해드렸다.

몇 살이냐고 다섯 번째 물으실 때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와 주문하고 수발들며 함께 점심을 먹던 아시안 돌보미가 "벌써 여러 번 물었다"며 할머니를 타박했다. 다시 답해 드리는 거 어렵지 않은데. 갑자기 누리가 먹던 점심을 멈추게 한 그 할머니보다(사실 그 할머니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누리에게 낯선 얼굴일 뿐) 야박하게 할머니를 대하는 그 돌보미가 더 미웠다.


만감이 교차하며 살며시 목이 메이는 그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