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life] 잔정

토닥s 2015. 2. 22. 07:40

나보다 먼저 외국인과 결혼하게 되어 외국에 생활하게 된 M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새가족이 된 외국인 가족들에게 처음엔 돈보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자잘한 선물들을 많이 고민했는데, 처음엔 그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그런 수고로움에 처음만큼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M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잔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친구고, 대학시절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몸서리 치던 친구라 그 마음과 말이 뜻하는 바를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시간을 거쳤다.  새가족이 된 외국인 가족들에게 돈보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리고' 한국이 담긴 자잘한 선물들을 하려고 많이 고민을 했다.  이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에게도.  그런데 어느 날 그 고민과 고민에 담긴 마음이 일방향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래서 이제 나도 내가 주고 싶은 선물보다 받는 이에게 실용적인 선물을 많이 주는 편이다.  상품권.  나는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아 좋고, 받는 이도 싫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변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편리'해지지만, '편안'이 아니라, 조금씩 심심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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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R님이 한국 다녀오면서 가져오신 선물.  한국선 벌써 지나간 핫유행이 되었겠지만.  여전히 우리를 어처구니 없게 웃게 만드는 땅콩 마카다미아.  오리지널은 재고가 없어 같은 회사의 초코렛 코팅이 된 마카다미아로 데려오셨다.  R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 그저 땅콩이 아니라 '한국의 씁쓸한 일면'이 뒷맛으로 따라오는 웃음이었다.  달달함으로 끝나지 않는 초코렛 코팅 마카다미아.





우리에겐 핫한 선물을 주셨고, 누리에겐 한글 스티커 책을 주셨다.  3000원 짜리라며 수줍게 주신 선물은 요즘 누리가 가장 좋아할만한 선물이었다.  덕분에, 누리가 스티커에 꽂혀 있어 우리는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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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국에서 그 한글 스티커 책을 누리에게 주려고 사왔다고 생각하니 볼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