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750days] 내 아이가 보인다

토닥s 2014. 10. 9. 05:34

같은 동네 사는 독일인 엄마 한 명이 한 열흘 전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정도 그 집 아이를 봐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그 엄마가 이틀 반 정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집에서 일하는 남편이, 하루는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봐주기로 하였는데 나머지 반일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  동네 요가 스튜디오에서 임신요가를 하면서 만난 아이 엄마인데, 그 집 딸은 누리보다 6주 정도 늦다.  하지만 그 집엔 딸과 3살 터울 아들이 있어, 걷기 같은 건 그 집 아이가 더 빨랐다.  그 집 아이는 보고 배우는 게 있으니까.


그 엄마와 다른 영국인 엄마 한 명이 비슷한 시기에 딸들을 낳은 처지라 가끔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랬다.  영국인 엄마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면서 좀 뜸해지긴 했지만, 가끔 동네 놀이터에서 본다.  처음 1년 그 사람들과 밥 먹고, 차 마실 땐 돌봄 품앗이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겪을 수록 상황과 성격이 다들 달라 어려울 것이란 결론을 혼자 내렸다.  특히 이 독일인 엄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독일인의 이미지와 상당히 거리가 멀다.  약속 변경 및 취소도 너무 잦고, 약속을 지킨다고 해도 30분에서 한 시간쯤 늦는 건 예사라 가까이 할 수록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많아져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엄마의 제안이 나에게 큰 도전이 될꺼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은 누리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물론 그 엄마도 차일드마인더[각주:1]나 어린이집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으니 좋고.  그래도 지비는 혼자서 누리 하나도 감당을 못하는 나를 걱정했고, 늘 감기를 달고 사는 그 집 아이가 누리에게 감기를 옮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어린이집과 학교를 먼저 간 오빠가 있으니 그 집 아이는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하여간 좋은 점과 걱정되는 점이 함께라서 제안에 답하지 못하고 생각만 해보겠다 했다.  그 엄마도 좀 더 알아보겠다고 놀이터에서 헤어졌는데, 지난 일요일 전화가 와서 이번 주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그 반나절 아이 봐줄 곳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 보루로 생각했던 차일드마인더는 어린이집보다는 싸지만, 반나절은 안봐준다고.  그래서 다른 차일드마인더를 찾아볼 때까지, 이번 주만이라도 봐달라고 전화가 왔다.  '그래, 다 같이 도전해보자'며 약간 반강제 느낌으로 오케이를 하게됐다.  오늘 아침 드디어 그 집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왔다.  기저귀 하나 바지 하나 물티슈 하나 인형 두 개가 든 가방을 들고.  아이는 아빠가 떠나기도 전에 집 안으로 쑥 들어가버렸고, 누리만 그 아이 아빠에게 잘 가라고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처음 한 시간은 정신이 없었다.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장난감에 신이 났고, 누리는 그 광경을 지켜보거나 울상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누리는 나눠본 경험이 없어 그 상황이 당황이 되었을테다.  그래도 그 아이는 손님이니까, 또 내가 누리가 배웠으면 하는 것이니까 '나눠야 한다'고 여러 차례 설명해줬다.





더러는 같이 놀기도 하고, 가끔 놀이터에서 만났던 사이라 낯설어 하지는 않는다, 더러는 누리가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면서 3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그 3시간이 6시간처럼 혹은 그 이상처럼 느껴졌다.  내가 시계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울상짓는 누리를 달래느라, 그 아이가 던져놓은 장난감을 주워담느라 혼이 쏙 빠진 3시간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지비에게 말했다).  다른 집 아이와 함께 보니 누리가 어떤 아이인지 더 보였다.  고작 3시간 보내고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그게 솔직한 마음.


중성적인 느낌의 누리도 오빠가 있는 그 집 아이와 견주어보니 참 유하게(혹은 여성적으로) 보였다.  그 집 아이가 스쿠터, 유모차, 장난감 집 같이 커다란 것에 관심을 보인다면, 누리는 그 집 아이가 흥미를 잃고 던져 놓은 퍼즐을 주워담거나 색연필, 책 같은데 관심을 가졌다.  물론 스쿠터 서로 타겠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조금 의외는 형제자매가 있는 집 아이라고 '나눔'을 다 아는 건 아니라는 생각.  물론 얘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 걸 더더욱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만지는 걸 누리가 뒤늦게 만지려고 들면 "마인!mine"이라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나와 누리가 여러 번 놀랐다.  되려 형제자매들과 나눠야하는 상황 때문에 내 것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리는 mine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른다.  모든 게 자기 것이니.


확실한 건 아이 마다 다르다는 것.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꼭 이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빠가 있는 덕에 그 아이는 좀더 액티브한 느낌이었다.  나쁜 말로 좀 과격.  퍼즐과 레고를 던져대는 통에 나중엔 다 치워버려야 했다.  그리고 독어와 영어를 이해하는 아이인데, 내가 영어 한국어 섞어 말해도 상황을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말은 누리가 더 잘하는 것 같고.  아니다.  그 아이가 독어 말했는데 내가 몰랐을 수도 있다.



이 반나절 아이 돌보기를 더하게 될지는 모르지만(안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누리가 그렇게 어려운 아이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고마워하고 살아야지.  하지만, 누리의 사회성을 어떻게 더 높여줄 수 있을지는 계속 숙제다.

  1. 차일드마인더child minder는 보통 자신의 집에서 3~4명의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의 부모들이 차일드마인더의 집에 데려오고, 데려가는 식이다. 주로 한 가정의 아이(들)만 돌보는 베이비시터baby sitter나 내니nanny보다는 저렴하지만, 되려 더 직업적인 경우가 많다. 등록된 차일드마인더들은 아이를 맡긴 부모들이 소득공제 같은 세제혜택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