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4년

[taste] 런던 커피 페스티벌 London Coffee Festival

토닥s 2014. 4. 11. 06:27

지난 주 초에 커피가 똑 떨어졌다.  그래도 일주일 내내 커피를 사지 않고 버텼다.  지난 일요일에 런던 커피 페스티벌에 다녀왔는데, 거기 가면 괜찮은 커피를 살 수 있을꺼라는 기대 때문에 버텼다.  결과적으로 거기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왔고, 이번 주는 어찌 장보러 갈 타이밍이 나지 않아 집에 있는 인스턴트 커피로 아침을 깨웠다.  이 인스턴스 커피들도 여기저기 여행다니면서 호텔에서 주워담은 스틱들.  오늘 오전에 나가서 커피 사왔다.  하지만 누리가 잠들어서 커피콩을 갈지 못해서 지금은 옥수수 수염차를 마신다.  런던 커피 페스티벌로 돌아가서.


예전보다 커피와 많이 멀어졌다.  마시고 싶어도 하루에 두 잔 이상은 힘들고, 밖에서 마시는 강한 커피라면 중간 사이즈 한 잔도 힘들다.  잠을 못자고 그런게 문제가 아니라 심장이 아프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래도 결국은 내 느낌이겠지만, 심장이 아프도록 뛴다.  그래서 한 잔 한 잔이 더 소중해졌다.  커피와 멀어졌지만, 더 애틋해진(?) 상황.


지하철 역에서 광고를 보고 지비에게 가자고 했다.   마침 별 일도 없고.  역시 별 일도 없는 해롤드에 같이 가자고 했다.  누리의 생활 루틴과 카페인의 역효과를 생각해서 우린 일요일 아침 세션으로 예약했다.  입장료가 11파운드인가 해서 잠시 망설였는데, 입장료의 절반이 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제3세계 국가에게 돌아간다고 해서 선한(?) 마음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대신 가서 무료 커피 많이 많이 먹자고 지비와 다짐했다.  일요일 아침 9시 반, 막 침대에서 뛰어나와 샤워만 한 듯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해롤드를 태워 페스티벌이 열리는 이스트 런던으로 출발.



브릭레인 마켓이라는 유명한 관광지/시장이 있는 곳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이라 차 댈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겨우 한 자리 찾아 대고 10시를 넘겨 갔다.  일요일 아침이면 한산할 것이라는 기대는 우리의 착각이었다.  해롤드는 현장에서 표를 사려고 했는데, 현장 판매가 매진이었다.  그리고 오전 세션 입장이 다 끝나봐야 입장이 가능한지를 알 수 있다나.  안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먼저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지 15분쯤 지나 해롤드도 들어왔다.


가장 큰 전시장이면서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당연 대세답게 캡슐 커피를 주력으로 한 큰 브랜드들이었다.  UCC도 있었는데, 지금 되새겨보니 네스프레소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해롤드의 추천으로 주로 독일 커피들을 맛봤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이름들.





함께 간 해롤드.


이날 느낀 해롤드의 면모는 영업사원 같았다.  재무쪽으로 일하는 친구인데, 어찌나 여기저기 말을 잘 붙이는지.  덕분에 자잘구레 긴 설명들과 함께 잘 얻어(?) 먹었다.



우유회사 부스에서 마련한 이벤트.  참가자가 라떼를 만들어볼 기회를 준다. 



이건 바bar에서 7파운드에 판매했던 에스프레소 마티니.  맥주라면 도전해봤을 것 같은데 칵테일이라서 패스.  사실 비싸기도 했다.



싱글 마키아또.


지비와 나눠먹긴 했지만 에스프레소 두 잔쯤 맛보고 나니 더는 안들어가서 편법으로 마키아또.  술술 잘넘어간다.  이런데서 라떼, 아메리카노로 배불리는 건 곤란하다.



영국 사람들인지라 커피 페스티벌에서도 빠지지 않는 티.  에스프레소에 물릴 즈음 허브티로 디-톡스.



마차라서 하나 사볼까 했는데, 오리지널 맛이 없고 죄다 과일맛.  이곳 사람들은 녹차를 왜 이렇게 과일맛과 섞어 먹는지 알 수가 없다.  녹차맛을 몰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에로프레스aeropress.


에로.  야한 것 말구 공중에서 누르는 식.  이웃 블로거 님의 포스팅에서 본 클레버라는 드리퍼랑 비슷한 아이디어인데, 이건 여과지가 없다는 점에서 프렌치프레스에 가깝다.  따라서 맛도 텁텁하겠다.





밖에 나가서라도 원두로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스턴트 포트(라고 해야하나).  비닐주머니에 물만 채워주면 된다.  커피, 녹차, 허브 다 있었는데 정말 맛이 별로 였다.  탕약 같았다는.  아무래도 신선한 원두나, 신선하진 않더라도 신선미와 향을 잡아 두는 기술따윈 없으니 그럴 수 밖에. 

더군다나 요즘엔 분말형으로 나오는 원두커피(별다방의 via 같은 것들)도 꽤 먹을만 하기 때문에 이런 것까지는 오바다.. 싶다.



핸드메이드 워머였다.  그냥 천의 패턴이 이뻤던 걸로만 만족.



인디펜던트 영역에서 전혀 인디펜던트하지 않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물량을 공세하고 있던 유니온.  산지의 소농들을 조합형으로 운영하는데(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식재료를 주문하는 온라인 상점에서 팔길레 예전에 한 봉지 먹어봤는데 그렇게 맛있었다는  기억이 없다.  다시 사먹지 않은 걸로 봐서 맛이 별로 였다.  가격은 일반 공정무역보다 조금 더 비쌌던듯.  용량도 좀 많고.


지비의 운동 때문에 노팅힐에 자주 갈때는 그곳의 까페에서 파는 원두를 조금씩 사먹었다.  요즘은 그곳에 잘 갈 일이 없어 그냥 마트에서 파는 커피를 사먹는다.  특별히 고집하는 것 없이 공정무역 커피로 그때그때 세일을 하거나, 못보던 것이 있으면 먹어본다.  한 봉지 사서 후딱 먹고 다른 것 사마시는데, 여러가지 쟁여두기보다는, 그게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으니까 여러가지 쟁여두면 오래 먹게 되는데, 한 가지 한 봉지씩 먹어버리면 오래된다는 느낌이 없다.  그리고 커피도 나쁘지 않다.  오늘 산 커피는 탄자니아 커뮤니티 공정무역 - 선드라이 피베리.  한 봉지 2.5파운드.




이 사람들은 커피 바bar에서 스무고개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뭘하는지 들어보려고 해도 장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들을 수가 없었다.  누리의 피로도와 공복감이 1시간 반을 넘어가면서 극에 달해 해롤드를 남겨두고 우리만 먼저 나왔다.  해롤드에겐 차에서 누리 밥 먹이고 있겠다 하면서.



구글에서 마련한 코너인데 커피 페스티벌과는 전혀 무관한듯.  좀 센쓰가 없었던듯.


보통때 같으면 해롤드와 커피를 한 잔 하곤 하는데 그날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 물 시켜놓고 밥을 먹었다.  그래도 집에 가는 내도록 눈은 또롱또롱하고, 심장은 아프고 그랬다.



집에와서 페스티벌 입구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나눠주던 가방을 열어봤다.  비스킷, 초콜렛, 음료 샘플, 그리고 음료 쿠폰들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거리상 우리가 쓸만한 건 별다방 무료 커피 쿠폰이 전부.  그래도 에스프레소 몇 잔에 남는 장사였다고 우리끼리 평가함.



역시 행사장에서 나눠주던 잡지를 보다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는 페이지를 발견했다.  영국 사람들이, 그 중에서도 런던 사람들의 커피 소비 패턴에 관한 것이었는데 무려 43%의 사람들이 커피를 소비할 때 윤리적 소비를 염두에 둔다고 한다.  공정무역과 같은.  36%의 영국 사람들 또한 그러하고.  그런 이유로 시중의 커피브랜드들은 최소한 공정무역 커피나 열대우림보존지원 마크를 단 커피를 다룬다.



커피 한 잔에 그걸 소비하는 사회의 수준도 담긴 셈이다.  앞에 놓인 찻잔에 무엇이 담겼는지, 무엇을 담을 것인지는 알고 보면 소비하는 사람의 역할이 크다.


런던 커피 페스티벌에서 우리는 그런 걸 느꼈다.  더 이상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리가.  다시 어울릴 날이 오기도 하겠지만, 그럴려면 한참이 걸리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도 동물원이나 열심히 찾고 있다.  그런 현실이 싫다기보다는 그렇다는 걸 깊이 느꼈다, 이 페스티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