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food] 추억의 김밥

토닥s 2013. 11. 7. 22:50

정말로 오랜만에 김밥을 만들어 보이차와 함께 저녁으로 먹었다.  지비가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서 약간 이른시간부터 누리를 지비에게 넘기고 김밥을 만들었다.  김밥의 생명은 단무지며, 김밥을 위한 필살병기는 김밥말이며, 김밥 만들기 고수의 척도는 재료가 가운데로 가도록 마는데 있다고 혼자서 생각하면서 8줄 만들었다.  김밥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낼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 두줄을 싸두었다고 하니, 회사 동료들에겐 그냥 '스시'일뿐일 것 같다고 그런다.  그래서 내가 꼭 '한국 김밥'이라고 말해주라고 했다.  우리에게 스시란 '니기리', 밥 위에 생선이 올라간,일뿐이고 여기 사람들도 좋아하는 '롤'은 미국에서 개량된 것이라는 등등으로 가지를 쳤다가 이야기의 끝은 '추억의 김밥'으로.  





우리에게 김밥이란 일년에 두 서너 번, 봄 가을 소풍과 운동회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모두 같은 김밥을 싸가도 집집마다 맛이 달라서 친구들과 하나씩 바꾸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김밥을 한 번 더 먹기 위해 언니들의 소풍날과 내 소풍날이 어긋나기를 고대하던 어린 날들도 있었다.  그런 음식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건 90년대 후반 '김밥X국'과 '김밥X라' 같은 김밥집이 생기면서다.  아 'X우동' 그런 브랜드도 있었다.  볼이 터질듯 먹어지는 굵은 김밥을 팔던 집.  그래도 우리에게 김밥은 김밥이었다.  나름 추억의 음식이라는.


서너살쯤 어린 후배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김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야간자율학습 때 간식으로,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지 못한 날 대용으로 너무 많이 먹었단다.  그 이후엔 직업상의 문제로 야근(?)하면서 만만하니 많이 먹고.  그래서 싫단다.


또 그런 이야기도 들었다.  벌써 한참 전부터 엄마들은 소풍날 김밥을 싸지 않고,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준다고.  그래서 소풍에서 다 똑같은 김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기분이 좀 그랬다.  물론 김밥이 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긴 하다.


그래도 우리에게, 적어도 나에게 추억의 음식인 김밥이 찬밥신세라니.  마치 내 추억이 찬밥대우를 받는 것 같다.  그래서 씁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