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life] 호의

토닥s 2013. 9. 6. 06:46

더운 날씨도 피할 겸 대충 때운 점심도 보충할 겸 장보러 갔다가 별다방에 들렀다.  우리가 옆 자리에 앉을 때부터 호의를 보이시던 할머니가 계속해서 말씀을 걸어오신다.  


애가 몇 살이냐, 나는 어디서 왔느냐, 애 아빠는 영국인이냐, 애 아빠는 직업이 뭐냐, 이 동네는 얼마나 살았냐, 애가 너무 귀엽다는 등등.  12개월, 한국, 폴란드인, ... 쭉 단답형으로 답하다 내가 너무 뚱-한듯해서 영국인은 아닌 것 같다고 물었다.  영어는 잘해도 이 동네 영어는 아닌듯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오셨단다.  그렇게 쳐도 유창하지는 않아서 거기서 자랐나고 물었더니 네덜란드에서 나고 자랐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오래 살았단다.  런던엔 4개월 전에 일 때문에 왔고, Chiswick엔 지난 금요일에 이사왔다고.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그닥 배고파 하지 않는 누리에게 줄 이유식을 주섬주섬 꺼내 먹였다.  나도 참.

내가 이유식을 먹이는 사이에도 아이가 너무 이쁘다며 계속 감탄하신다.  고맙다고 고맙다고 인사는 했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서, 정말로, 주섬주섬 일어서는데 이 동네 살다보면 또 볼 날이 있지 않겠냐며 잘 가라고 인사하신다.  아마도..잘지내라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그냥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국도 여기도 호의를 호의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되버려서.  하지만 영국인들은 잘 묻지 않는 자잘구레 개인사를 물어오시니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게 됐던 것이다.  새끼 낳은 동물처럼 보인 건 아닐까..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뒷덜미가 찜찜하다.  돌아가서 "그게 아니라요.."하기도 그렇고.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하고, 바르셀로나의 S가 남편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어떤 사람은 버스 옆자리 앉은 사람이 일자리를 소개해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는데.  좀 열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건..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