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22weeks] 잠이 보약

토닥s 2013. 2. 21. 02:32

아기가 있는 혹은 있었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대화는 월령(나이)에서 시작해서 잠으로 끝난다.  누리가 밤엔 5~6주쯤부터 깨지 않고 잠을 잔다하면 다들 "fantastic"이라고들 한다.  더 대화를 나눌틈이 있으면 덧붙여 우리와 함께 자서 그렇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래도 괜찮냐는 반응인데, 요즘은 누리 혼자 아기침대에 자고 있다고 말하면 다시 "fantastic"이라고 한다.


누리는 병원에서 집으로 와서 잘잤다.  문제는 모유수유였지만, 우리가 밤쯤되면 포기하고 우유를 주면 배불리 먹고 잘잤다.  누리가 깨지 않아도 새벽 2~3시쯤 되면 내가 일어나 기저귀 갈고 우유를 먹였고, 그리고 5~6시쯤 한 번 더 일어나 기저귀 갈기와 우유 먹기를 반복했다.  모유수유가 풀리지 않는 가운데 그래도 자는 것에만큼은 문제가 없었는데 딱 3주쯤 문제가 생겼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문제의 시작은 지비였다.


이메일 보관함으로 날라온 여러가지 육아정보 중에 그런 게 있었다.  때가 되면 어르지 않아도 혼자 잘 수 있게 해야한다는.  한글로도 검색해보니 '수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서도 부모와 떨어져 혼자 잠드는 습관을 기르려고 많은 부모들이 애를 쓰고 있었다.  대부분은 아이가 울어서 포기했다는 눈물 섞인 후일담.  하여간 그런 수면교육이란 걸 지비에게 이야기해줬더니 바로 해본다면서 누리가 울어도 안아주지 않고 아기침대에서 재우기 바로 돌입.  그게 되겠나?  당연히 안됐지.  누리의 대성통곡과 나의 버럭으로 끝났다. (- - );;


그리고 한 2주 동안 내가 고생을 했다.  밤에 잠들기 전, 새벽에 깨서 잠투정이 아주 찐했다.  그래서 한 시간 정도는 안아줘야 잠이 들었고, 그리고 나서야 침대에 누리를 놓을 수 있었다.  깊이 잠들지 않으면 잠든 누리도 침대에 놓으면 깨곤 했다.  오죽했으면 잠든 아기를 깨우는 요술침대라고 했겠는가.  물론 누리를 안고 새벽을 보낸건 나였고, 지비는 잘 잤다.  지비는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아기침대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며, 무슨 일이 있었나하고 이야기했다.  나는 속으로 '너 때문이잖아!'라고.

그때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기침대를 싫어하는게 누리만 그런 건 아니라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나와있었다.  대표적인게 엄마의 냄새가 나는 옷, 베개커버를 깔아보는 일.  되었겠나?  역시 안됐다.


잠이 깨는 누리와 아기침대를 오가던 어느날 지비가 그냥 우리 사이에 재우자고 했다.  "그럴까?"하고 냉큼 내려놓고 잤다.  그때부터 누리는 새벽에 깨지 않고 잘 수 있게 됐다.  그말은 지비와 나도 깨지 않고 잘 수 있게 됐다는 말.  물론 열흘에 한 번 깨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기저귀만 갈아주면 다시 잘 잔다.


아기와 함께 자지 않는 것이 이곳의 문화라서,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와 아기가 함께 자고 아빠는 혼자 자는 한국과는 다르다, 아기를 둔 초보 부모답지 않게 쿨쿨 잘 자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묵직한 짐을 진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우리가 밤잠을 설치게 되는 것이 두려워 그냥 누리와 함께 자는 걸 택했다.  침대 양쪽 끝에 대롱대롱 메달려 자면서.

그러다 열흘간의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던 날, 날을 잡았다.  오늘부터 아기침대에 재우기를 시도해보자고.  연휴 첫날 우유를 먹이고 아기침대에 큰맘먹고 내려놓았는데 그냥 쭉 자는거다.(' ' );;


그래서 그날부터 누리는 혼자서 아기침대에 잔다.  가끔 깨는 날도 있지만, 기저귀가 많이 축축해 갈아주어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다시 잔다.  오늘 새벽에도 혼자 깨서 쫑알거리다 잠들었다.

누리는 부실모유와 함께 700ml 정도의 우유를 먹는다.  누리 월령이면 900-1000ml 정도 우유를 먹는다고 한다.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먹는 모유량이 100ml가 안될 것 같은 상황에서 누리가 잘 자라는게 잠을 잘자서가 아닐까하고 혼자서 생각했다.  잠이 보약인 셈이다.  뭐, 생각보다 모유가 많을 수도 있고.  하지만 분명하게 특별한 산후조리가 없었던 내게나 지비에게는 잠이 보약일테다.






누리가 태어나고서 한 동안 잠들었던 포즈는 한 마디로 뒤집어 놓은 통닭 같았다.  지금도 그런 포즈가 꽤 편해 보인다.  왜 그럴까하면서 지비랑 많이 웃었는데, 아마도 아홉달 엄마 뱃속에서 그렇지 지내다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와서도 그 포즈가 편한 것.  정말 뱃속에서의 포즈 그대로 위아래만 바꾸어 놓은 포즈니까.



한국에선 아기싸개로 아기 두 손을 꽁꽁 싼다.  놀랠까봐 그렇다고해서 나도 들은대로 쌀려고 했는데, 왜 아기를 싸냐는 지비.  그냥 자연스레 편한대로 두어라해서 누리가 만세를 부르며 자도 내버려두었다.  그 결과 누리는 지금도 만세를 부르고 잔다. 

요즘 누리는 두 손만 잡아주면 일어나 앉는데, 지비는 누리가 만세를 부르고 자서 어깨 힘이 좋은 것 같단다.(- - );;






한 번 잠들면 잘 자지만 그래도 밤에 재우기는 쉽지 않다.  누리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서 좀 늦게 자는편이다.  대략 10시반에서 11시반쯤 잠이드니까.  잠들 준비는 9시부터 하지만 한 시간 정도 잠투정을 한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이야길 했더니 우리 조카는 하루 종일 잠투정을 했단다.(- - );;

대략의 수순은 9시부터 방에 데리고 들어가 맛사지도 해주고 옷도 갈아입힌다.  그리고 모유를 먹이고, 우유를 먹인다.  30ml 정도의 우유만 남았을 때 트림을 시키고, 아기침대에 놓고 남은 우유를 준다.  운이 좋은 날은 그대로 잠이 든다.  그런 날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고 나머지는 다시 안아 올리거나 우유를 좀 더 줘야한다.  그렇게 트림시키고 우유주기를 반복하다보면 잔다.



초보부모들이 아기 잠재우기에 고생이 많다보니 인터넷에 이래해라 저래해라 답이 많다.  그런데 아기따라 다르니 그 답이 내 아기에게도 답이 되란 법이 없다.  그래서 수면교육이랍시고 우는 아기 내버려두는 건 좀 아니다 싶다.  지비의 사촌형수인 고샤의 말따라 아기들도 엄마 배 밖으로 나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얼마나 힘들겠냐는.  안아달라고 울면 좀 안아주라는.  아기니까 그렇다는.  그런 말 새기며 하룻밤 하룻밤 보내다보면 언젠가 누리도 혼자 잠들날이 오겠지.  그럼, 와야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