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people] 당당한 주영씨

토닥s 2012. 10. 31. 18:13

어제 하루 누리와의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도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죽어서야 내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 한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다.  2005년 장애인 미디어교육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주영씨.

그 보다 앞서 서울서 장애인 미디어교육에 참가하면서 이후 그 바닥에 뛰어든 주영씨를 서울에서 사전 미팅을 하면서 만났다.  그리고 부산에서도 만났다.  짧은 시간, 그것도 빡빡한 회의하면서 얼굴을 본 그녀가 얼굴을 대한지 두 세 번쯤 지났을 때 너무 친하게 다가왔다.  나라는 사람은 그럴때 되려 한 걸음 물러선다.


겨우 두 세 번 봤을 뿐인데 그녀는 조잘조잘 쉼없이 이야기했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저없이 당당하게 부탁했다.  휠체어 뒤에 매달린 가방에서 약을 꺼내달라, 떨어진 뭔가를 주워달라, 그리고 가방에서 또 다른 걸 꺼내달라.  나는 속으로 '참 당당하게도 부탁하네'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제가 당당하게 부탁해서 이상한가요?"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장애인이 도움이 필요할 때 미안해하거나 도움 받기를 주저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도 시혜를 베푼다고 생각하거나 장애인을 불쌍해하면 안된다고.  그냥 도움이 필요하니까 도움을 청하는거고, 상대방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못하면 안도와주면 되는거라고.  맞는 말이었다.


서류에서 뜯어낸 스테이플러 알을 무심코 버릴까봐 그런 것들이 휠체어 타이어에 박히면 바람이 빠진다고 한 발 앞서 잔소리하던 주영씨.  그런데 나는 그 잔소리도 당당한 도움 요청도 싫지 않았다.  장애인을 향한 불쌍한 혹은 불편한 시선을 수평적으로 교정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장애인이라서 우리가 항상 양보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어떨 땐 싸우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가르쳐 준 셈이다.



Seoul, Korea (2005)


그렇게 당당했던 그녀가 혼자 살던 집에 난 화재에 숨을 거두었다.  어른 걸음 세 발짝이면 나갈 수 있었을 집을 혼자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직접 119에 전화해서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녀의 요청에 이번엔 우리의 대답이 너무 늦었다.  그 뉴스를 보면서 '왜 아픈데 혼자 살았어'하고 가슴을 쳤다.  중증장애인이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주영씨가 가족과 함께 살면 활동보조인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한다고, 그래서 혼자 살면서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는 쪽을 택한 것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newsview?newsid=20121030100923711


장애인이면서 스스로의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활동했던 주영씨는 이 세상 떠나가는 길마저도 그랬다.  당당했던 주영씨, 이젠 편히 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