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taste] 닭도리탕

토닥s 2012. 5. 11. 06:40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맛있고, 어묵탕보다 '오뎅탕'이 맛있기 때문에 닭볶음탕이 아니라 '닭도리탕'이니까 국어순화 운운하지 말기로 하고 시작!


먹는 것에 관한 포스팅은 날 참 갈등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내가 요리를 좋아하거나 잘할꺼라 생각할까봐.  한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먹으면서, 요리에 시간을 들이기보다 맛있기로 소문난집 찾아가 먹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랬던 것이 영국와서 바뀌었다.  이유는 물가가 비쌌기 때문이다.  돈이 없기도 하였지만, 지불한 돈에 만족스러울만한 외식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직접해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당연한 것이 됐다.  그러면서 느끼게 된 점도 많다.  그 동안 몸을 너무 혹사시켰구나.  그리고 우리 엄마도 너무 힘들게 했구나.  까다로운 딸 거두어 먹이느라.  바쁘게 사는 것도 아니면서 고작 둘이 먹는 아침을 위해 빵과 우유를 빈틈없이 채우는 일도 쉽지 않은데, 우리 엄마는 어떻게 늘 냉장고에 음식을 채웠을까.


나는 한국음식을 잘 못한다.  얼마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국사는 동안 김치찌개 한 번 끓여본적이 없다.  물론 이건 김치가 비싸서이기도 하다만.  된장이라는 걸 가져본적이 없다가 지난 여름 상인이가 와서 사두고간 된장을 찌개로 두 번 정도 끓여봤다.  처음은 처음이니까 맛이 없어도 참자하면서 먹었는데, 사람들은 그 쉽다는 된장찌개를, 두번째도 맛이 없어서 다시는 끓이지 말자하고 포기했다.  미역국도 된장국 비슷한 경로를 거쳐 끓이지 않게 됐다.  


어떤 날은 음식을 해놓고서 '나는 요리 신동 아닐까?'하고 생각이 드는데 훗날 다시 요리를 해보면 그 맛이 아닌 때가 많다.  그 어떤 날은 우연하게 맛있었던 날인 것이다.  한국음식의 제맛을 알리 없는 지비는 뭘 줘도 아주 짜지 않으면 맛있다하고 먹는다.  물론 나는 그 음식의 제맛이 그 맛이 아님을 숨긴다.  드문드문 한국음식을 하다보니 지비도 그 전에 먹었던 음식과 당장 앞에 주어진 음식의 맛을 비교하기론 쉽지 않을테고.  그래도 솔직하게 나는 안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얼마 전에 만든 닭도리탕이 그랬다.


사실 닭도리탕을 처음 해보게 된 경위는 그렇다.  한국슈퍼마켓에서 닭도리탕용 닭을 사왔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진 닭조각.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지비가 감기에 걸려 앓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신 후 너무 풀만 먹였다는.  닭이나 돼지, 소 고기를 일주일에 1~2회를 먹었는데 임신하고서는 소화도 안되고, 귀찮기도 하니 본의 아니게 그 횟수가 확 줄어들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닭도리탕에 도전.


나 같이 요리 못하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양념이다.  그게 요리의 전부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사람마다 양념이 다른 것이다.  여러가지 레시피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양념을 추렸다.


주재료: 닭, 감자, 양파, 마늘, 파,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물엿, 맛술

부재료: 당근, 애호박, 생강가루


닭의 양과 채소는 사람수에 따라 기호에 따라 준비하면 될 터이고, 나는 시원하게 매콤한 닭도리탕을 기대하고 고추장(1), 고춧가루(2), 간장(2), 물엿(2) 비율로 넣었다.  맛술을 넣어야 하는 음식에 먹다 남은 와인을 넣기도 하는데, 임신 후 집에 먹다 남은 와인이 생길 일이 없어서 생략했다.  그런데 음식을 하고보니 꼭 있어야겠다 싶어 맛술을 주재료에 넣었다.  약간 잡내가 있다고 해야하나.

양념장을 따로 만들지 않고, 언제나처럼 닭을 비롯한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끓였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좋을 맛은 아니었지만 먹을만했다.  양념장이 맵거나 짜다고 생각했는데, 양파가 익으면서 단맛이 더해져 먹을만했다.  지비가 늘 신기해하는 매운 맛, 짠 맛, 단 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맛.  지비는 한국음식의 양념이 신기하단다.  두 가지 맛이 동시에 난다고.



이 사진이 처음만든 닭도리탕.  맛있게 먹었지만, 잘라진 닭조각에서 뼈조각이 가끔 나와 닭도리탕용 닭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주일 뒷쯤 이곳 슈퍼마켓에서 닭을 사서 재도전했다.  재도전 때는 아침에 미리 양념을 해서 닭을 재웠다가 저녁에 해서 먹었다.  그러면 고기에 양념이 더 베여들까 싶어서.  재도전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곳 슈퍼마켓에서 산 닭은 닭다리와 가슴부분이었는데, 닭도리탕용 닭보다 뼈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닭도리탕에서 내가 기대했던 시원하게 매콤한 맛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뼈에서 우러난 맛때문에 약간 텁텁한 맛이라고나 할까.  이런 걸 좋아할 사람도 있겠다.

그리고 두번째 시도에서는 작은 감자를 사서 통째로 익혔다.  그랬더니 큰 감자를 잘라서 넣었을때 양념이 베어든 감자와는 조금 다른, 심심한 맛이었다.  닭도리탕에서 닭만큼 중요한 감자이건만, 그냥 심심한 감자라니.


두번째 시도가 시원치않아서 조만간에 닭도리탕을 다시 도전할 일은 없겠지만, 두 가지 사실을 꼭 명심하리라.  닭엔 뼈가 적당해야 한다는 것과 감자는 큰 감자를 잘라서 쓰는 것이 좋다는 사실.

아 쓰고보니 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