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coolture] 우리도 우편으로 투표하게 해주세요.

토닥s 2012. 5. 8. 23:22

지난 5월 3일 영국에도 투표가 있었다.  아직도 제대로 이해가지 않는 시스템이지만, 내 식대로 이해하면 런던시장과 시의회쯤으로 이해되는 투표가 있었다.  영어 명칭으론 London mayoral & London assembly eclection이다.  런던시장은 간단하니 패스.  이 assembly를 이해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일단 Greater London은 런던광역권쯤 되는데 그 안에 14개의 구역이 있다.  이 14개의 구역이 한국의 구에 해당하는 Borough와는 또 달라 이해하는데 어려웠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은 Hammersmith & Fulham Borough고 Assembly 구역으로는 Kensington & Chelsea와 Westminster와 함께 West Central이다.  한국식으론 중·대 선거구로 이해해야하나?( ' ')a


하여간 이 집에 이사오고나서 선거인으로 등록하라는 우편이 왔다.  물론 그때는 선거와는 상관없는 때였는데.  사는 사람 이름에 지비와 내 이름을 올리니, 지비는 되지만 나는 안된다는 공손한 답장이 도착했다.  알고 있었지만, 그냥 내 이름도 넣어봤다.  유럽인의 경우 국회의원선거격인 MP 선거를 제외하고 지역자치단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2~3월쯤 지역자치단체 선거를 위한 선거인 확인 메일이 한 번 날라오고, 4월 초에 투표를 우편으로 할껀지, 직접 5월 3일에 할껀지를 신청하는 우편이 한 번 더 왔다.  우편으로 하겠다는 신청서를 보내고나니 신청서를 잘받았다는 확인과 투표Kit이 언제쯤 도착할 것이라는 안내장이 다시 우편으로 날라왔다(이 나라는 우편시스템을 민영화하면 투표에도 꽤 많은 비용이 들겠구나 싶다).  그리고 드디어 4월 20일쯤 투표Kit이 도착했다.  지비는 별로 관심도 없는데, 내가 신청하라고 독촉하고 투표Kit도 내가 더 열심히 들여다봤다.  궁금해서.



내 입장에선 우편으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이번 4.11총선 때 재외국민선거를 하면서 해외 살아 투표하기도 어려운데, 이건 뭐 해외에서도 서울capital 아닌 지역에 살면 투표하기도 어렵겠다 싶었다.  미국 같은 곳이야 몇 군대의 투표소가 설치되었지만, 그래도 넓은 건 안다, 영국은 단 한 곳.  런던에만 투표소가 설치되었다.  투표기간이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이 넘기는 하였지만, 지역에 살면 하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경우 런던에 많은 수의 재외국민이 있고, 맨체스터지역에 또 상당한 학생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비싼 대중교통 비용을 생각할 때 투표하겠다는 마음 먹기가 쉽겠는가.  편도 3시간 기차타고 오는 것도 힘든데 비용까지 상당하니 말이다.

한국의 재외국민선거의 경우는 우편투표가 논의되었다가 부정투표 소지가 있어 논의로만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영국이라고 그런 소지가 없겠냐만, 그러면 투표소를 많이 설치 하던지.(-_- );;



투표Kit에는 모두 3장의 투표용지가 들어있었다.  한 장은 런던 시장 선거용, 한 장은 Assembly 지역구, 그리고 한 장은 역시 Assembly용이었지만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었다.  투표할 내용마다 용지의 색깔이 달라 참 좋다고 생각했다.


런던 시장 선거용은 간단하니 다시 패스.  Greater London의 지역은 14개로 나뉜다.  각 지역구에서 한 명씩 선출되고, 또 11명은 정당 투표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한 석이라도 얻으려면 5%이상의 정당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한다.


런던 시장과 Assembly 지역구 투표는 First vote와 Second vote를 하게 되어 있다.  우리식으로 풀이하자면 1순위, 2순위 선택쯤 되겠다.  First vote에서 50%를 얻지 못하면 당선자로 확정하지 않고 First vote에서 1위와 2위를 얻은 후보자만 Second vote의 표를 더해 최종 당선자 확정한다.  지비랑 나는 이거 이해하는데도 한참 설명문을 들여다 봐야했다. 


우편으로 투표할 수 있는 것도 특이하지만 나는 투표용지에 기입된 후보자, 정당들의 기호표기도 새로웠다.  한국은 정당 의석수로 결정이 되지만, 여기선 그냥 알파벳 순이었다.  후보자의 이름 알파벳 순으로 정해진다.  정당의 이름도 마찬가지.  이거 참 괜찮다 싶다.  한국에선 무조건 1번이라는 식으로 선거운동도하고, 사람들도 그렇게 투표하기도 하니까.  알파벳 순으로 정해지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를 찾기 위해 한 번은 더 훑어 봐야하니 좋은 것 같다.



투표 후 담아야 할 봉투가 2개 들어 있다.  A봉투는 투표자의 서명을 하도록 되어 있다.  이걸 보고, 그럼 누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꺼 아니야하고 단순한 지비랑 나는 일순간 놀랐다.  알고 보니 이 서명 부분은 밀봉될 부분 다음에 날개처럼 달려 있어, 관련 기관에 도착한 뒤 서명부분만 절취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밀봉된 A봉투는 개표를 위해 따로 보관되는 것이었다.  그 A봉투 자체를 다시 B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내게 되어있다.

한국 같으면야 의심스러워서 잘 될까 의문인데, 나도 재외선거 후 내 투표용지가 제대로 가는건지 살짝 의심이 되긴 했다, 일단 여기선 이렇게 한다.


투표가 투표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비밀투표가 될 가능성은 적다.  지비만해도 누굴찍을까, 어느 정당을 찍을까 내게 물어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에선 부모-자식간에 다른 사람, 다른 정당을 찍는다고 등질 일도 아니라서 상관없겠다 싶다.  오히려 가족내 토론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도 긍정적인 생각도 든다. 


낯선 선거제도를 인터넷으로 검색해가면서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다시 보내고나니 이번 선거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 후보자들의 내용이 담긴 공보물이 날라와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공보물엔 선거 정보는 물론 Assembly,  First vote와 Second vote에 관한 설명도 있어 조금만 일찍 왔으면 유용했을 것 같다.




지비가 투표용지를 보내고서 일주일 뒤, 선거 2~3일 전부터 동네 곳곳에 투표소가 설치되고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다.  영국에 와서 투표소에 관련된 사진 한 장을 봤는데 어느 시골 동네 미용실에 설치된 투표소였다.  왠지 그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런던 역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마다 크지 않은 투표소가 설치되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표를 관리하는 사람이 편한 것이 아니라 투표를 하는 사람이.


재외국민선거를 하면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여러 나라의 상황을 보고 살펴 우려를 보완해 당장은 어렵더라도 우편으로 투표를 할 수 있게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영국의 지역자치단체 선거 결과?

런던을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 보수당이 의석을 잃고 그 자리를 노동당이 되찾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가, 내가 주의깊게 볼 부분은 보수당과 연정한 자유민주당 역시 큰 영향을 받을 많큼 많은 자리를 잃었다는 점.  일반적인 시민들의 지지를 잃은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 그 당이 고수해오던 많은 가치들을 보수당과의 연정을 위해 포기한 결과 전통적인 지지자들도 많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지켜야 할 가치를 간과하면 지지도, 결국은 존재자체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이걸 한국에서 중도 혹은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좀 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