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18weeks] 혼란스러운 임신부를 위한 음식목록

토닥s 2012. 4. 22. 22:23

임신을 알고나서 가장 먼저 임신부를 위한 음식목록을 챙겨봤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먹어야 할 음식목록.  많은 과일과 야채를 권하고, 카페인, 알콜 그리고 날 것을 피한다는 일반적인 사항을 제외하곤 이곳 병원의 권장사항과 인터넷에서 찾아본 한국의 정보들이 차이가 있어 혼란스러웠다. 


Eat well, but no soft cheese & pate


이곳 GP의 권장사항은 간단하다.  Eat well, but no soft cheese & pate.  브리나 블루치즈는 일종의 곰팡이를 이용해 만든 것이므로, 발효 음식이 다 그렇지 않나?, 권하지 않는다.  파떼Pate는 빵에 발라 먹는 고기 페이스트다.  나는 한 번도 먹어본일이 없지만, 이곳 사람들은 잘 먹는다.  간을 포함한 고기를 갈아서 만들고 야채들이 추가되는데, 간이 비타민A가 너무 많은 음식이라 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임신을 알고난 기념으로 지비와 나가서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한다며 순대정식을 먹었다.  순대와 간이 듬뿍 들어간.  이런.(- - )a



그 외에도 GP와 병원에서 딸려온 브로셔들을 보면 좀더 자세하게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이 나와있는데, 눈에 뛰는 것은 참치 같은 심해어류의 량을 제한하고 있다.  생선을 먹는 것은 좋지만, 그 양을 일주일에 몇 mg으로 제한해서 권하고 있다.


그리고 입덧이 있을 때 먹으면 좋다고 생강차나 생강쿠키를 추천한다.  특별한 입덧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역류하는 신물과 소화불량의 불편함을 잊으려고 생강쿠키와 생강빵을 열심히 오렌지 쥬스와 먹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아본 한국의 정보에선 생강을 먹지말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 );;

생강이 열을 내는 음식이므로 태열이 생길 수 있다며.  도대체 먹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다 슬며시 먹지 않게 됐다.


이곳의 브로셔들을 보면서 의외였던 것은 치즈를 종류에 따라 제한한다는 것과, 일반 치즈는 괜찮다고 한다, 홈메이드 마요네즈, 홈메이드 아이스크림 등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홈메이드면 다 좋은 것 아닌가?  홈메이드 마요네즈와 홈메이드 아이스크림엔 날 달걀이 들어가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유 중에서도 멸균하지 않은 염소우유도 권하지 않는다.  유제품이면 다 좋은 거 아닐까 생각했는데 것도 아닌 셈.  특이 했던 것은 꿀 역시 권하지 않는다.  아마도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밀가루 음식을 권하지 않지만, 이곳은 주식이 빵 아닌가.  그래서 브라운브래드, 호밀빵을 권한다.  설탕도 브라운슈거.


자세한 정보들을 찾고 또 찾으면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조건은 날 것을 먹지 않는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국의 임신부들은 뭘 먹을까?


이곳의 브로셔들을 보면서 대체 뭘 먹을 수 있는 걸까 생각이 들던 때 한국의 블로거들이 올려 놓은 방대한 정보를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이곳의 음식목록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던 것이다.  임신 시기별로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한국에선 간이 먹으면 좋은 음식에 올라 있다는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고, 생강이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올라 있다는 게 나를 진땀 흐르게 했다.


입맛이 없어서 먹었던 메밀국수나 냉면도 메밀이 몸을 차갑게 한다는 성질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할 목록에 있었다.  콩나물 대신 즐겨 먹었던 숙주나물, 녹두도 소염작용이 있으니 먹지 말아야 할 목록에 있었고.  임신 후 배가 자주 고파져 과자보다 낫겠지하는 마음으로 간식 삼아 먹었던 떡 중 시루떡도 역시 먹지 말아야 할 목록에 척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 정보들을 보고 있으면 뭘 먹을 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한국의 임신부들은 대체 뭘 먹나요?  과일만 먹나요?( ' ')a


끼니 조정


확실한 건 임신 후 자주 배가 고파진다는 거다.  나만 그런가?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걸신들려 그런 건 아니고(- - );;, 배부르게 음식을 못먹는다.  소화도 잘 안되고, 위도 불편해서.  그래서 보통 때보다 본의 아니게 적은 량이 들어간다, 일반적으로는.  정말 '본의'가 아니다.  그래서 조금 먹고 나면 금새 배가 고파지고 그런게 아닐까 싶다.  가끔 참지 못하고 정량, 혹은 그 이상을 먹으면 앓아 누워야 한다.  위가 불편해서.  그럴 때마다 지비가 나무란다.


그래서 처음엔 4끼로 적은 량으로 나누어 먹으려고 노력했다, 집에 있는 날만이라도.  아침(아침 7시)과 저녁(저녁 8시)을 지비와 함께 먹으니 약간 이른 점심을 11시쯤, 그리고 씨리얼이나 빵같은 끼니가 될만한 간식을 오후 3~4시쯤 먹었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집에 가만히 있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 정도고, 나머진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볼 일을 보면 생각했던 패턴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는 나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계속 먹는 것처럼 보이고, 먹는 나도 눈치가 보이니까.  그래서 3끼로 보통사람들과 시간을 맞추어 먹되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과 저녁 사이 쥬스, 과일, 두유, 요거트를 먹었는데 이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걸신들린 사람처럼 보였겠다.  흑흑 아니야, 아니야.( i i)


그래도 이젠 주변 사람들이 알만큼 알아서 그냥 당당하게 내 먹어야 할 때 맞추어 먹는 편이다.  문제는 어딜 나가려면 혼자 먹는 짐이 한 가방이다.  처음엔 혼자 먹기 미안해서 주변사람들 먹을 요거트며 과일까지 챙겼는데, 짐이 너무 많고 가방이 무거워져서 중간에 포기.  미안해요, 몇 개월만 혼자 먹을께요.( ' ');;

그런 이유로 웬만하면 나갈 일을 만들지 않는다.  일주일에 이틀을 제외하곤 동네에서 외톨이로 칩거 중.


카페인 줄이기


개인적으로 처음에도 지금도 힘든 건 카페인을 줄이는 것이다.  카페인이라는 건 내게 곧 커피.  그 전에도 심장 때문에, 생각보다 허약하다, 2잔으로 줄였는데 거기서 더 줄인다는 게 힘들었다.  요즘은 매일 마시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집에서 연하게 만든 커피 두 번 정도 마시니까.  어쩌다 커피숍에서 디카프로 한 잔.

그러다 가끔 밖에서 아이스카페라떼를 사서 꿀꺽꿀꺽 원샷한다.  그 시원함이란.( i i)


카페인을 줄이려고 나름 고군분투하지만 쉽지가 않다.  예전엔 늘 밖에서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몰랐는데, 커피를 제외하면 사람을 만날 때 마실 게 없다.  오렌지 쥬스를 마시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작은 까페에서 디카프 티나 커피가 있냐고 물으면 녹차를 권한다.  녹차가 블랙티보단 낫지만, 그도 카페인이 있고 녹차는 몸을 차갑게 하는 성질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도 웬만하면 마시겠지만, 결정적으로 여기 녹차는 쓰기만 하고 맛이 없다.

쌀쌀했던 어느 날은 배도 고프고 해서 빵 한 조각과 따듯한 우유를 먹으려고 큰 길거리에 있는 까페라는 까페는 다 들어갔는데 따듯한 우유를 파는 곳이 없었다. 


영국 사람들은 커피가 블랙티보다 카페인이 많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비슷비슷 할 것 같은데.  하루에 블랙티를 4~5잔 마시는 이곳 사람들은 내가 임신한 걸 알아도 늘 블랙티를 권한다.  블랙티를 권할 때 'NO'하는 법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티 정도는...'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블랙티와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이곳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맥주 한 잔 정도는...' 또는 '와인 한 잔 정도는...'하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곳 사람들에게 그 '한 잔 정도는...'이 아주 자주 있는 것 같다.


행복하게 Eat Well


그러면 나는 몸에 좋은 것만 가려서 먹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먹고 나면 괴로울 줄 알면서도 컵라면을 뚝딱 먹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앞서 말했듯 아이스라떼를 원샷하는 경우도 있다.  맵고 짠 음식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양념을 적게 넣는다고 변명하면서 비빔냉면과 닭도리탕(닭볶음탕)도 먹었다.  맵고 짜고 거기다가 날 것인 오징어젓갈 무말랭이 무침을 지난 번에 한국 슈퍼 갔을 때 발견해서 입맛이 없을 때 야금야금 긴급구호식처럼 먹는다.


여전히 뭘 먹어도 먹고나면 위가 불편하지만, 먹는 순간은 즐겁게 먹으려고 한다.  여느 한국 사람들처럼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고, 단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게 다행이긴 하다.  먹고 싶은데 못 먹으면 얼마나 힘들까.  먹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면 먹는다가 지론인데, 임신부를 위한 음식 가이드라인과 내 지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이 자주 없다.  없다고 세뇌하자.  그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정신건강을 챙기면서 행복하게 먹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가장 안되는 건 물을 마시는 일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하는 소변검사 때도 물을 많이 마시라는 소리를 듣는데 그게 어렵다.  그래도 마셔보지 뭐.(' '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