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life] Zibi는 시청 中

토닥s 2011. 6. 28. 23:18

그러니까 시작은 그랬다.  한국에 다니러 갔을때 지비와 실바나만 남겨두고 저녁먹고 언니들과 잠시 외출을 했다.  집에 온 작은 언니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왔는데, 다녀오니 둘이 나란히 쇼파에 앉아 눈을 반짝이고 있는 거였다.  막 KBS 미니시리즈 '동안미녀'의 첫회가 끝난 때였다.  그러면서 둘이서 흥분해서 횡설수설 자기들이 뭘 봤는데,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재미있어 보이니 다음에 꼭 봐야한다는 거였다.  가만 보아하니 제목만 들어도 유치하고 안봐도 그만인 것 같았지만 어차피 저녁시간엔 할 일도 없거니와 그러마하고 다음날 나란히 앉아봤다. 

그렇게 우리들의 드라마 시청은 시작되었고, 월목 드라마 끝나고 수목은 MBC 미니시리즈 '최고의 사랑'을 봤다.  너무들 좋아하는 거다.  심지어 지비는 제주도 가서도 '동안미녀'를 봤다.
아래의 사진들은 한국을 먼저 떠나간 실바나를 약올리기 위해 지비가 집에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페이스북에 올려 실바나를 약올렸다.




한국에서 돌아오고 며칠 잊고 말았는데, 어느 날은 지비가 유투브에서 '동안미녀'를 검색해서 보는거다.  한편쯤 보다가 갑갑해서 안볼려고 하는데, 지비가 자꾸 무슨 말인지 물어봐서, 어느 날은 영어자막에 좋은 화질로 올려 놓은 사이트를 찾은거다.  그때부터 밤마다 '동안미녀'와 '최고의 사랑'을 영어자막과 함께 TV로 봤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내가 한국 어느 구석에 있는지, 런던의 한 동네에 있는지 헛갈릴 정도였다.

한국을 떠나오고 한동안 못본 시리즈를 따라 잡는 동안 매일매일 한 편씩 봤는데, 10회쯤 넘어서면서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며칠은 기다려야 하는 거다.  사실 동영상은 금새 올라오는데, 영어자막은 5일에서 일주일은 기다려야 올라오는 것이다.  자막을 기다리는 동안 지비가 얼마나 웃겼는지 안본 사람은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이트에 들어가 자막이 올라왔나 확인 하는 것.  나야 혼자서도 볼 수 있지만 의리있게 기다려 줬다.
우리가 본 파일은 DVD에 담아 실바나에게 주었다.  그 친구도 주말마다 방콕하면서 열심히 두 드라마를 보고 있는 중.

나와 지비의 경우는 '최고의 사랑'을, 실바나의 경우는 '동안미녀'를 재미있게 봤다.  지비와 나는 처음으로 이번과정을 통해서 실바나가 지금까지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찾는지 알게 됐다.  '동안미녀'의 류진이 좋단다.('_' );;
나는 장나라보나 윤서역을 맡은 배우가 이쁘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런 애를 좋아할 수가 있냐고 버럭 감정이입하고 있는 실바나. 내가 좋다고 했나, 그냥 객관적으로 장나라보다 이쁘다고 했지.(-_- );;

지비는 TV로 드라마를 볼 땐 꼭 볼륨을 올린다.  "못알아듣는데 볼륨은 왜?"라고 물으면, "느낄 수가 없다"고 한다.  아이구.
지비는 '최고의 사랑'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곧 '동안미녀'도 끝난다는 사실을 너무 안타까워 한다.  어쩌다가 한국에서 미니시리즈의 시작을 보는 바람에 여기까지 보게됐지만, 뭘 또 보겠냐 싶었는데.  지난 주말엔 두 드라마의 위키를 가만히 쳐다보던 지비가, " '동안미녀'가 시청률 3위고 '최고의 사랑'이 2위라는데 1위는 뭘까?"하고 묻는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인 건가?


아메리칸 아이돌도 보다가만 지비가, 자기가 좋아하던 아이가 out되고 나서, 이 두 드라마를 끝까지 본 걸 보면 재미가 있긴 한가 싶고 그렇다.  나야, 한국말로 보고 듣는게 쉬워서 편하니까 보는거지만.

한 두어 달 전쯤 옥스팜에 새로운 아이가 왔다.  그 친구가 어디서 왔냐길래 한국에서 왔다니까, "응 그래?"하더니, 한 1분쯤 쉬었다가 나에게 'you are beautiful'이라는 한국드라마를 아냐고 물어왔다.  물론 나는 모르니까 모른다고 했지.  "응 그래."하고 말을 멈추는거다.  첫날 온 애한테 내가 너무 사교성 없이 말을 잘랐나 싶어, 내가 다시 물었다.  내가 영어제목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어떤 드라마인지 말해보라고.  그랬더니 구구절절 이야기를 푼다.  그러면서 말끝에 나도 한국드라마 친구가 처음 권해줄 때 "이런 유치한 걸 내가 어떻게 보니?"라고 했는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한국드라마를 찾아 항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뭐, 그렇다고 이런 걸 '문화의 힘'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만, 좀 신기하긴 하다.  웃기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