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life] 빨래

토닥s 2011. 6. 9. 22:52

영국에 살면서 날씨에 의존해 뭔가를 계획한다는 건 부질없는 일이라고 일찍이 생각해 왔지만, 빨래를 발코니에 널었다 다시 접어 옮겼다 하면서 '참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보고 침대 커버, 이불 커버 세탁을 결심했다.  아침을 먹자 말자 파란 하늘이 사라질까 무섭게 세탁기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세탁이 끝나기도 전에 파란 하늘은 온데 간데 없고 구름 낀 하늘이다.  그래도 '뭐 비만 안오면 그게 어딘가'하면서 발코니에 의자를 펼치고 커버 하나를 내다 놓고, 나머진 건조대에 걸쳐 실내에 두었다.  물론 발코니의 문은 활짝 열어둔 채로.

자전거 등록 때문에 오기로 약속했던 경찰관이 와서 자전거를 보관해두는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유리창 밖으로 비가 오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사실 우리집 발코니에는 윗층 발코니가 있어 비가 바로 들이칠 염려는 없는데, 당시는 그 생각을 못하고 "1초만 잠시만"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와 발코니에 널었던 커버를 걷었다.  경찰이 돌아가고 실내에 의자 4개를 세워두고 그 위에 커버를 펼쳐 널고 나니, 건조대가 하나뿐이라, 10분도 안되서 햇볕이 나는 것이다.  '뭐야!'하고 혼자서 분탕질하다 소심하게 혹시 또 비올까 빨래는 실내에 그냥 두기로 하였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조그만 햇볕 위에 화분을 내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뒤부터 하늘은 지금까지 계속 구름으로 무겁다.

멍하니 발코니에 기대 하늘을 쳐다보다 들어오니 세탁기의 건조기 버튼이 나를 유혹한다.  '안돼, 그래도 지구를 지켜야지.'


일본 후쿠시마 쓰나미 이후 날씨에 관한 불만은 하지 않기로 다짐 했는데, 쓰다보니 투덜거리고 있네.

그나저나 나는 요즘 빨래를 삶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 없다.  달리 길이 없어 감행은 못하고 있지만. 
참 이것도 우리 엄마가 들으면 자다가 웃을 일이다, 내가 빨래를 삶고 싶어 하다니.(_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