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0년

[life] 아르헨티나인들과의 수다

토닥s 2010. 8. 17. 19:28
요가를 시작한 것이 2월이니까 벌써 6개월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인기있는 수업은 아니라서 보통 4~6명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3명정도.  나, 지비, 그리고 실바나.  실바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왔다.  아르헨티나에서 4~5년 정도 미국계 통신회사의 콜센터에서 일한덕에 유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한다.   실바나와 수업시작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언제 한 번 한 잔'이란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갔다.  그러기를 몇 주 마침내 날을 잡아 일요일에 맥주 한 잔 하기로 하였는데, 실바나가 제시한 시간은 저녁 8시쯤으로 우리에겐 무척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리치몬드 파크에서 차 한 잔으로 의견을 바꾸어 마침 실바나를 방문한 그녀의 친구 이바나와 리치몬드 파크로 갔다.

일전에 아는 한국인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가 봐둔 로지(lodge)가 있어 그리로 가자고 했다.  넓은 테라스에서 리치몬드의 그린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날 처음 이바나를 만났지만 처음 만난 것 같지 않게 여러가지 주제를 오가며 이야기했다.  내 기분은 마치 '신방과 사람들'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고나(정말 우리는 대학시절 소소한 것들에 침 튀겨가며 열심히 수다를 떨지 않았던가).

이바나는 실바나의 대학친구로 콜센터에서도 함께 일했다.  이 두 친구는 한국으로 치자면 영문학을 대학에서 공부하고 미국계 통신회사의 콜센터에서 일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통신회사의 해외 콜센터에서 일한 것이다.   영국도 그렇지만 콜센터와 같은 인력집약적인 부처를 영어권 나라이면서 인력이 저렴한 곳에 많이 둔다.  비록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쓰지만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미국 통신회사가 콜센터를 두었던 모양이다.  이들 둘은 원래도 영어를 좋아하고, 잘했지만 이곳에서 4~5년간 일하면서 영어를 더욱 늘일 수 있었다고. 
그러다 이바나가 먼저 번역, 구체적으론 스크린 번역에 관심을 두고 그 분야로 뛰어들고자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실바나도 이바나가 일터를 떠난 뒤 아르헨티나에 자사를 둔 영국계 회사에 비서로 이직을 했다고 한다.  영국 본사 인사들의 아르헨티나 방문을 수행하다 발탁되어 영국으로 오게됐고, 영국에 오고나서는 이전 콜센터에서 매니지먼트 경험을 인정받아 인사(HR)쪽 관련 업무를 하게 된 친구다.  물론 실바나의 이직엔 그녀의 조부모가 이탈리아인이어서 유럽연합 시민권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점도 작용했다고 본인은 이야기했다. 
영국으로 오기에 여러가지 운이 작용했다고 본인은 겸손하게 말하지만, 비록 요가 수업만이기는 하지만 4~5개월 지켜본 나로써는 운만이 유일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사교적이고 성실한 친구다.  그리고 뒤에 만남을 더해가면서 느끼게 된 것은 정말 지적인 친구다.  플러스 유창한 영어와 유럽연합 시민권까지.  완벽한 조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거기다 좀 많이 이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수다를 마치고 주변 산책에 나섰다.  펨브로크 로지(Pembroke lodge)를 출발해 10여 분쯤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오던 길로 돌린 후 한참을 서서 실바나의 이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주변을 살피던 지비가 와보라고해서 갔더니 전망대가 있었다.
런던 시외곽에 위치한 리치몬드 파크에서 런던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거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숲을 헤치지 않을만큼 공간을 만들어야했다.
리치몬드 파크에서 센인트 폴 대성당까지 거리는 10마일이다.  망원경을 들여다본 우리는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우연하게 길가에서 동전 하나 주운 기분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망원경에 붙어 감탄하고 있는 사이 한 가족도 안내 표지을 보고 우리 뒤에 줄을 섰다.  영국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눈으로 보기전엔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리치몬드 파크와 세인트 폴 대성당까지의 거리를 알만한 분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다음 망원경을 보고서는 "진짜네"라고 간단한 감탄사를 남기셨다.
우리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 전망대에 대한 안내도 여행책자에 있는 모양이다.  여행책자를 손에 든 관광객도 우리 뒤에 볼 수 있었으니까.  사실 런던에 관광을 온 사람이 시외곽에 있는 리치몬드 파크까지 오기는 쉽지 않지만, 3일 이상 묵어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기회되면 꼭 Henry Mound에서 참신한 전망을 구경하고 펨브로크 로지에 들러 afternoon tea 한 잔 하시길.
어쩌다 실바나와 이바나 이야기에서 볼거리 이야기로 흘러버렸다.  다시 이야기를 돌리자.
참고. BBC Henry mound view
        http://www.bbc.co.uk/london/content/panoramas/richmond_henrymound_360.shtml
참고. Richmond Park, London
        http://www.richmondparklondon.co.uk/photos/stpaulsfromkinghenrysmound.html

6주간 실바나를 방문한 이바나의 일정이 끝나가는 즈음 '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더'라는 이야기가 나와 집에서 멀지 않은 해머스미스 다리(Hammersmith bridge) 옆 펍에서 맥주를 한 잔하기로 했다.  이미 마지막 주말 관광으로 지쳐있던 두 사람은 해머스미스에 다다르자 "꺅!"하며 너무들 좋아했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해질 무렵이어서 저문 햇살과 옛분위기 물씬 풍기는 다리 그리고 펍의 분위기가 어우려져 볼만한 풍경이었다.  커다란 쇼핑센터가 아니라 이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건 참 쉽지 않은데, 그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맥주 한 잔씩 사들고 앉아서는 꽤나 무거운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이바나의 6주간 여행에 관한 것이었다.  소감이 어떻냐 그런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이바나는 이번 영국여행을 위해 5~6년간 돈을 모았다고 한다.  실바나와 콜센터에서 함께 일할때부터 그녀는 영국여행을 위해 돈을 모은 셈이었는데, 이 이유는 임금때문이다.  영국 돈으로 200파운드 정도가 한달 월급이었으니 6주간의 여행을 위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 친구들은 아르헨티나가 2001년 경제 위기후 변화한 사회상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KBS 스페셜에서 '아르헨티나의 눈물'이라는 것을 보아서 전반적인 것은 이해를 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비참했다.  KBS스페셜도 국가가 공기업 민영화 방침을 선언한 후 방송됐다.  그런 정책이 우리보다 앞선 아르헨티나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전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와 비교해, 심지어 영국은 1930년대 경제 공황 수준에 가까운 위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자신들이 겪은 2001년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더 참혹했다고. 
높은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해 남부럽지 않은 직장과 월급이 있어도 파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중산층이 몰락했고, 국가의 산업은 물론 굵직한 기업들도 모두 해외로 팔려 외국계 회사 외에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외국계 회사라는 것이 아르헨티나에서 저렴한 인력으로 이윤을 창출할 뿐이지 투자하지 않아 계속된 악순환을 반복할뿐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조부모가 유럽에서 건너온 경우 해당 국가의 시민권을 취득해 젊은 인력들이 유럽으로 이동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라고 한다.  중산층의 몰락 뒤에 일할 수 있는 세대가 비어버리면서 제 2의 몰락을 맞고 있는 셈이다.

모든 산업을 외국계가 장악해버린 지금은 높은 물가 때문에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물가 비싼 런던에서 빵, 우유 등 식료품이 너무 싸서 좋다고 이 친구들이 생각한다면 할 말 다 한거 아닌가.  거기다가 이 친구들은 런던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불평하는, 그래서 이제는 입아프다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교통시스템에 대해서 한 마디로 "wonderful!"이라고 소리쳤다.  어려워진 경제 때문에 치안 또한 불안하다고 한다.  이바나는 아르헨티나에 돌아가면 소고기를 먹을꺼라고 그랬지만,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아르헨티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낭만, 탱고 그런건 없었다.
사실 이바나도 이탈리아 시민권을 얻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한다.  조부모 한 쪽이 역시 이탈리아인이라고.  그런데 그 과정이 실바나 때처럼 쉽지가 않다고 한다.  실바나의 경우는 어릴 때 아버지가 준비해서 이탈리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쓰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연합 시민권을 얻으려고 하고 있고, 때문에 절차도 까다로워졌다고.

그날은 이래저래 무거운 이야기로만 이어졌지만, 서른 살의 두 여자와 함께 하는 수다가 즐거웠다.  꼭 한 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이바나는 지난 목요일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언제 나는 그곳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