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3년

[life] 버스타고 동네 한 바퀴

토닥s 2023. 10. 30. 02:50

아이는 가을 중간 방학을 맞아 지비와 함께 폴란드에 다녀왔다.  아이와 지비가 없는 5박 6일 동안 집콕하며 뒹굴할꺼란 결심과 달리 아이와 지비가 떠난 날부터 시내로 나가 사람도 만나고, 다음날도 시내로 나가 모임에도 참석하고, 그리고 돌아와 늦은 시간까지(저녁 6-7시) 지인과 밀린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이와 지비는 첫날 폴란드에서 환승 비행기를 놓쳐 바르샤바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던 것을 빼고는 잘 도착해서 가족들도 만나고, 새로 생긴 볼거리들을 찾아다니며 잘 보냈다.  그런데 나는 감기인지 독감인지에 걸려 일주일 내내 고생했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비드 검사까지 해봤다.  다행히 코비드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원래도 집콕할 생각이었지만, 주말에 외출했던 것을 제외하곤 마트에 우유 한 번 사러 나가고 계속 집콕 &냉파하며 지냈다.  유튜브로 밀린 시사프로그램들도 많이 보고, 이름만 들어본 토크 프로그램들도 늦게까지 봤다.    기침도 여전하고, 목소리도 여전히 감기 환자지만 목 통증은 가실 즈음 아이와 지비가 런던으로 돌아왔다.  '환자'인 덕분에 아이는 여전히 지비와 자고, 나는 독방을 차지하고 있다.  금요일 다함께 집콕한 우리는 토요일 다함께 버스를 타고 아이가 지원할 중등학교를 가보기로 했다.

아이는 내년 9월에 중등학교를 간다.  10월 말에 지원하면 그 결과가 내년 3월 1일에 나온다.  런던에서는 6개까지 학교가 지원 가능한데, 모두가 좋은 학교(?)에 가고 싶으니 상당히 치열하다.  큰 아이가 초등 4학년쯤 되면 이 학교 때문에 이사를 하는 가정도 많고, 솔직히 말하면 가능만하면 위장전입도 불사한다.  이사, 위장전입을 하는 이유는 초등학교와 같이 '거리'를 기준으로 입학생을 선정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재단의 신념에 따라 종교 증서 같은 걸 요구하는 학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학교들도 종교 증서+거리 기준으로 입학생이 선정된다.  그래서 형편되면 좋은 학교 앞으로 이사를 하기도 하지만, 좋은 학교 앞은 집값도 비싸고 집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사갈 형편도 안되니 우리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중등학교 탐색에 나섰다.  결론은 멀지 않은 거리에 좋은 학교들은 많지만, 우리는 갈 수 없는(?) 상황.  멀지 않은 학교들도 워낙 인기가 높다보니 학교 근처에 살아야 하는데, 그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고.  그나마 가까운 거리의 학교들은 아이도 별로 가고 싶지 않고, 우리도 별로 보내고 싶지 않은 학교들이라 고민이 됐다, 작년에.  
사람들이 아이를 어떤 학교에 보낼꺼냐고 물으면 나는 주로 학업 성취보다는 '엄격한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왜?" 한결 같았다.
지비와 내가 보기에 아이는 어떤 학교에 가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아이인 것 같다.  문제는 환경인데, 한국도 그런지 모르지만 이곳 아이들의 일탈은 어른의 그것을 초월한다.  학교가 엄격하면, 아이들을 규정에 맞게 처분하거나 (이것도 100%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내보낸다.  인기가 많은 학교들은 들어올 사람들이 줄을 섰으니 그런 결정을 용기 있게 내리는 반면,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학교 재정에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을 다 안고 간다.  그러니 교실에서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런 상황들 잘 컨트롤 하는 학교인가가 내게는 학업 성취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 왔다.

작년에  세 학교, 올해 다섯 학교를 보느라 정신없는 9월이었다.  우리가 꼽은 학교들은 실제 거리를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인기가 많은 학교들이라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배정 받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 우리는 음악 전형을 통해 그 학교들에 지원해보기로 했다, 작년에.
10월은 다섯 학교의 음악 전형에 응시하느라 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둘다 집에 있고 애 하나라도 이렇게 정신 없는데, 어린 동생 있고 부부 중 한 사람이 이 과정을 거친다면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그 어느 학교의 음악 전형에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례상으로 볼 때 배정 받을 수도 있는(?) 정도의 순위를 기록했다.  (앞 순위)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바뀔 수는 있지만 우리가 선호했던 1번, 2번 학교 중에 한 곳을 배정 받기를 희망해 볼 수 있는 순위.  그래서 어떤 학교를 선호 1번으로 넣을 것이냐, 2번으로 넣을 것이냐를 우리끼리 정해보기 위해 늘 차로만 타고 다니던 길을 버스틀 타고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희망하는 두 학교는 모두 버스, 지하철 통학이 가능한 30-35분 정도 거리다.  가장 가까운 학교가 걸어서 25분, 그 다음 가까운 학교는 걸어서 40분(그런데 교통 정체구간을 지나는 버스라 버스를 타고도 30분)이라 그 학교들과 비교해서도 나쁜 조건은 아니라 우리의 희망학교에 넣었다.
토요일이라 일상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버스를 타게 된다면'하는 마음으로 두 학교를 비교해보기로 했다.  지하철이 공사로 운행이 정지되어 버스와 지하철 통학을 비교해보지 못했지만, 버스로 가보니 생각보다 오고 가는 길이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나서기 전 사실 아이가 좋아하는 학교 1번과 내가 좋아하는 학교 1번이 달랐다.  그런데 직접 버스타고 가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학교 1번이 훨씬 접근이 편하고 안전하다는데 우리 셋 모두 동의하게 됐다.

두 학교를 뚜벅이로 방문해보고 인근 일본 까페에 앉아 한 마음으로 순서대로 선호하는 6개학교를 정했다.  일년 동안 미뤄둔 숙제를 마친 기분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지원서를 제출했다.

사실 이곳에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다른 한국 맘들처럼 열심히 입학 정보를 찾는 편도 아니라 입학 관련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 맘들의 정보는 물론, 언니 오빠를 이미 중등학교에 보낸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도 학교 안팎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 전형 지원 때는 아이 학교의 음악 선생님의 무한한 응원과 바이올린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비 순번이라 정확하게 결정된 바가 없어서)지금 당장 고마움의 인사를 전할 처지가 못되지만 나중에 꼭 챙겨서 인사할 생각이다.  꼭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정말 좋겠다.

그러니 이 글의 후속은 중등학교 지원 결과가 나오는 내년 3월에나-.  그때까지 블로그에 글 안쓴다는 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