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에게 관대한 나라(feat. 길 위의 마스크들)

토닥s 2021. 3. 20. 02:36

예전에 두 아이들과 영국을 찾은 친구가 런던-캠브릿지 구간을 여행하며 기차표를 구입했다.  성인 1명과 어린이 2명의 요금이 36파운드였는데, 성인 1명이 34파운드였고 어린이 2명은 각각 1파운드였다.  기차표 발권료의 개념이 아니었던가 싶다.  현재 런던은 5살까지는 지하철 버스가 무료고, (혼자서 여행할 경우)5-10살은 사진이 있는 교통카드가 있으면 무료고, 어른과 동반하면 해당 나이는 4명까지 무료다.  사진이 있는 교통카드가 11-15세는 버스가 무료고, 지하철은 어린이요금을 낸다.  이 11-15세 무료 승차가 없어질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때 기차표를 산 친구가 한 말이 "이 나라는 어린이에게 관대한 나라구만"이었다. 

 

나도 아이를 지금까지 키우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했다.  누리가 어릴 때 지하철을 타보면 아이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는 사람들이지만,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어쩌다 내가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대부분은 거절하고, 어떤 분들은 무척 고마워하신다.  바다 건너 유럽 대륙으로가면 아무도 누리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다.  거기에 불평하면 지비는 내가 런던에서 너무 '누리고 살았다'고 그런다.

 

이 코비드 시국(?) 거치면서 '의료진을 갈아 넣었다'는 표현을 종종 본다.  100% 넘치게 공감한다.  그리고 '엄마들을 갈아 넣었다', '여성들의 삶을 50년 후퇴시켰다'라는 표현도 보인다.  직업을 가진 여성이든, 그렇지 않은 여성이든 모두에게 해당된다.  100% 공감한다.  여성들은, 어른들은 이 후진 사회 시스템을 방관했다는, 무능한 정치와 정부를 방관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들은 뭔가.  아이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 - 생존권, 인권, 교육권, ... 많은 부분이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후순위로 밀렸다.  우리 사회의 약자인 노령층을 위해서 또 다른 약자인 아이들의 기본권을 '갈아 넣은 것'이다.  통계로만 보면 아이들이 코비드에 걸렸을 경우 중증이나 사망으로까지 가는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보인다.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국에서 코비드 백신을 맞은 80세 이상의 40%가 접종 후 코비드 방역 수칙(같은 집에 주거하는 사람 이외에는 만날 수가 없고, 혼자 사는 1인 가구일 경우 다른 주소지의 사람들과 서포트 버블을 구성할 수 있다.  이 서포트 버블 이외의 사람들은 만날 수 없다)을 어기고 실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이 뉴스에 달린 댓글 중 거의 99%는 외로운 노령층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주 드물게 이기적인 노인들이라고, 아이들이 일년 가까이 학교를 가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글이 있기는 했다.  물론 그 글에는 부정정인 댓글들이 또 꼬리를 물었다.  그 글들을 보며 '이 나라는 노인들에게 관대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모두에게 관대한 나라가 되면 좋다.

 

www.theguardian.com/world/2021/mar/04/about-40-of-over-80s-in-england-broke-covid-rules-after-jab-study

 

About 40% of over-80s in England broke Covid rules after jab

ONS survey shows two in five people met up with someone indoors when not permitted

www.theguardian.com

사람들은 백신을 맞고 휴가를 가고, 펍과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어른들에게 그런 날이 와도 백신도 맞을 수 없고(올 겨울이 되면 맞기 시작할꺼라고 희망하고는 있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10일간의 자가격리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어른들이 좀 더 엄격하게 방역 수칙들을 지키며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벌써 아이들은 일년 동안 자신들도 뭐라 말할 수 없는 우울감과 지루함을 겪었고, 학교에서는 학업부진이라는 이름으로 뒤쫓기고 있다(이거 참 말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관대한 시간이 한 동안 필요하다.

 

www.bbc.co.uk/news/av/uk-england-london-56381642

 

Kids' drawings depict lockdown feelings

Pupils at a school in north London have been describing their experience of lockdown in pictures.

www.bbc.co.uk

봉쇄기간 동안 우울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와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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