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백신이 정치와 만날 때

토닥s 2021. 2. 26. 23:36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영국에도 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MMR(Measles, Mumps and Rubella 홍역, 볼거리 그리고 풍진) 백신을 자폐증 유발의 원인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고, 독감 백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백신을 반대하는 사람도 보았다.  개인적으로 큰 선천적 질환이 없고, 의학적 전문지식도 없으니 권장되는 대부분의 백신은 나도 맞았고, 누리도 맞혔다.  한국에 살 땐 독감 예방접종을 해본 일이 없는데 여기 살면서는 2년에 한 번씩 맞은 것 같다.  2년에 한 번씩인 이유는 독감 예방접종을 한 해에도 독감에 걸려 며칠 고생하면, 소용없다는 생각에 다음해는 맞지 않게 된다.  그러다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해에 독감에 걸려 몇주 고생하면, 다음해에는 겁나서 또 맞고.  그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분명한 건 나이가 들수록😭 감기도, 독감도 길게 그리고 심하게 앓는다.

지난 겨울(지금도 겨울이지만) 누리는 학교에서, 지비는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바우처로 약국에서, 나는 돈을 지불하고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  영국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많이 권장했는데, 이유는 독감 예방주사가 코비드를 예방하거나 증세를 줄여주기 때문이 아니라(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독감으로 유발될 수 있는 병원 과부화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코비드 이전에 겨울은 독감 때문에 늘 병원에 과부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비드로 병원이 과부화 상태니 독감이 걸려도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 '알아서 하시라'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오늘 쓰려던 이야기가 이게 아닌데-.1🙄

 

코비드 백신 개발이 이야기 될 때 지비와 나는 부정적이었다.  백신 개발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도 없거니와 급하게 만들어진 백신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국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만 조심한다고 코비드를 피할 수가 없는, 확진자의 수가 너무너무 많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코비드가 변화를 거듭하며 무증상도 많고.  사회적 거리와 개인위생 지키기(마스크)로는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영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 백신을 적극적으로 접종했다고 본다.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  확신할 수 없지만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만 그런게 아니라 유럽 대부분의 나라, 한국과 같은 아시아 몇 개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그런 처지다.  지난 12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첫 코비드 백신이 접종 될 때 주목을 받았다.  첫번째 접종자의 모습과 인터뷰가 미디어에 반복되어 나왔다.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버린 코로나를 생각하면 그 주목은 당연한 것일지도.  그 뒤 정치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애초 1차와 2차 접종을 3주 간격으로 고안된 백신을 12주 간격이 되어도 괜찮다고 바꾸면서 1차라도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데 집중한다. 

 

그 와중에 영국은 이제는 완전 결별한듯한 유럽연합과 백신으로 신경전도 벌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졌는데, 내용은 65세 이상에서 임상으로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65세 이상에 효과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고, 독일에서는 65세 이상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뉴스를 찾아 읽어보니 (아스트라제네카 편드는 거 아닙니다) 65세 이상 660명 임상실험했는데 이 중 2명만 코비드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임상실험 참가자 수가 적은 것이 문제라고 분명히 할 것이지, 안전성과 효과성 운운해서 선택권 없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불안감만 키웠다. 

사실 이에 앞서 유럽연합은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공급이 늦어지자 두 회사가 영국에 우선공급하여 유럽연합에 공급해야 할 백신을 영국이 '새치기'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유럽(벨기에였던가)에서 생산되는 미국 회사인 화이자의 백신을 유럽 밖으로의 수출금지를 고려하겠다고까지 했다.  화이자는 우선 공급이 늦어진 것은 생산 설비를 증설하기 위한 공사 때문이고, 공급은 계약 순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모를 일이다, 영국이 윗돈+뒷돈을 제시하며 백신 우선공급을 요구했는지도.  이스라엘의 경우는 화이자와 계약 때 백신 가격 2배를 제시하고, 접종 후 데이터를 제공하는 댓가로 우선공급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오늘 쓰려던 이야기가 이게 아닌데-.2🙄 

 

(쓰다가 하루 넘기고)

 

어제 한국 뉴스를 듣다가 뭔가 싸한- 기운을 느꼈다.  뉴스의 내용은 한국에는 1호 접종자가 없다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발언 내용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여러 곳의 백신 접종장소에서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한국의 1호 접종자는 없으며, 그 모두가 1호 접종자라는 발언이었다.  미디어는 '1호', '1등', '세계 최초' 이런 말들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생색 내기를 좋아하는 정치도 이런 말을 좋아한다.  백신을 먼저 시작한 나라들에서는 특별히 의미를 둔 사람이 맞기도 하고, 대통령 혹은 관계부처 장관이 맞기도 했다.  그 모습을 미디어는 중계하듯 전했다.  그런데 한국에 1호 접종자는 없다는 그 말은 '원칙대로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한국의 질병관리청 코비드 일일 브리핑도 그랬다.  메시지를 간단하고 담담하게 전하며,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모습이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달랐다.  한국의 일일 브리핑에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는게, 이 상황을 과학에 기반해 원칙대로 접근한다고 생각했다.  간혹 정치인들이 서민경제를 생각해서 규제완화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 정치인들이 일일 브리핑에 발을 들이밀 틈이 없었다.  영국에선 총리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오고 전문인을 대동하는 식이다.  좋은 소식은 정치인들이 성과처럼 말하고, 어려운 질문들은 전문가에게 떠밀었다.  그래서 종종 과학자 집단 의견과 정치인(정부) 의견이 상충한다는 소식이 뉴스에 등장하곤 했다.  3월 8일 전면 개학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이런 결정에 대해 과학자 집단은 우려를 표시했다고 한다. 

 

물론 질병관리청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 원칙에 기반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 것은 또 더 높은 곳에서 결정의 권한이 있는 그 누군가의 원칙과 철학일 것이다. 

 

1호 접종자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한 곳의 접종장소(도봉구 보건소)를 지정 공개해 취재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알아서들 다른 곳에서 취재한 것 같지만.  이 세세함에 놀랐다.  한국인의 경우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 높지 않지만, 백신 접종에 대한 홍보 채널이 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기본적으로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가 높은데, 유럽연합이 연일 아스크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확대 재생산한 결과 백신 접종 거부가 늘어났고, 백신 접종에 동의해도 화이자 백신을 맞겠다며 접종 연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백신 접종 거부가 50%에 이른다고 하니, 조금 있으면 프랑스 대통령이 나서서 먼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질병과 예방(백신공급)은 과학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정치와 만나면-, 요즘말로 '폭망'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자들의 우려를 넘어서는 영국의 코비드 출구전략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  급한대로 휴가철인 여름이라도 넘기고 보자, 일단 백신 접종으로 불이라도 끄고 보자가 정치인의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백신 접종과 봉쇄로 줄어든 확진자 수나 사망자 수를 보면 안심이 되다가도, 누리가 등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또 걱정이다.  언젠가는 직업 시장에 뛰어 들어야 할 나 또한 그렇고.

 

길 위의 마스크 #001
길 위의 마스크 #002

걱정이라 하면서도 기온이 높아지고, 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들뜬다.  겨울이 너무 길었다.  2019년의 겨울이 2021년 봄이 되어서야 끝나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