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life] 발코니 프로젝트

토닥s 2020. 6. 1. 08:26

올해 봄이 되면 발코니에 거는 형식의 화분을 사서 꾸며보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었다.  새로운 봄이 오면 사려고 가을 겨울 부지런히 화분도 고르고, 우리집 발코니에 맞는지 미리 문의도 해보고 그랬다.  그런데 봄보다 Covid-19이 먼저 왔다.  발코니 프로젝트와 Covid-19이 무슨 상관인가 싶은데 식료품을 구입하는 마트만큼이나 바쁜 곳이 DIY와 가든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그 동안 하지 못한 집수리와 봄맞이 가든정리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봄이오면 사려고 했던 화분은 아무리 찾아도 재고가 없고, 화분 흙값은 몇 배로 뛰었다.  DIY와 가든 용품을 파는 매장이 essential로 분류되어 문을 열기는 했지만, 직원수 부족으로 몇 군데 거점만 문을 열었다.  우리집과 가까운 매장은 문을 닫았다.  내가 원하는 화분을 파는 온라인상점에 재고알람을 신청해두고 기다렸다.  4월 어느날 재고알람을 받고 구입했는데, 이 Covid-19의 영향으로 배송도 한 열흘은 걸린 것 같다.  받아서 신나게 발코니에 걸어두고 흙을 담아뒀다.  동네 가든센터가 문을 여니마니해서 화분에 심을 식물도 없이 흙만 있는 빈화분으로 며칠 보냈는데 그 며칠 동안 강풍이 불었다.  강품이 지나고보니 흙이 많이 날라갔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가든센터 문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있는 씨앗 털어서 심었다.  꽃심을 화분에 열무를 심었다.  뭐라도 자라라 하면서.



올라간 기온탓에 일주일만에 쑥 자란 열무.



영국의 통행금지가 생기기 전 DIY용품점에 가서 사온 딸기 모종.  그때가 3월 중반이었는데 5월 말이 다되서 딸기 몇개 자랐다.  딸기 모종하나가 2파운드 정도인데, 두 개 심었더니 딸기가 서너개 달렸다.  차라리 그 돈으로 딸기 사먹는게 더 남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발코니 가꾸기와 누리의 자연학습(?)의 일환이니까-.



누리가 좋아해서 매년 심었던 토마토.  올해는 심지 않으려고했는데 모종 하나 사서 심었다.   영국에선 날씨가 흐려 토마토 성장속도가 너무 느리다.  9월이나 되어야 토마토를 맛볼 수 있는데, 그때되면 다시 날씨가 추워진다.  그래서 한 반년 키워서 토마토 몇 개 먹을 수 있다.  더군다나 누리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우리는 여름에 한국을 가니 한 여름에 돌봐줄 수도 없다.  알아서 자라라는 마음으로 샀는데 병에 걸렸는지 잘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작년에 한국서 사온 꽈리고추와 모듬상추.  꽈리고추를 심은 건 3월말이었는데 저 만큼 자랐다.  꽈리고추가 겨울을 견딘다면 내년에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다.  모듬상추는 누리가 털털털 제맘대로 씨았을 뿌렸는데 잘 자랐다.  그런데 그 속에서 진드기도 잘 자라고 있다.  한 번 성한 잎들만 골라서 먹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약을 쳐 진드기를 없애고 관상용으로나 키워야 할 것 같다.  다시 텅빈 화분으로 두면 또 흙이 날라가 버릴테니.



다른 화분에 심었던 열무(나물).  한 번 잘라서 비빔밤 만들어먹었다.  며칠 한 눈 판 사이 쑥 자라 꽃을 피웠다.  꽃 핀 식물은 안먹는다고 들은 것도 같고, 옆 상추 화분에서 진드기가 이사간듯해서 같이 약 쳐 관상용으로나 키워야 할 것 같다.

아는 분이 한국에서 받은 봉선화를 챙겨주셔서 애지중지 키웠는데 싹도 안난다.  같은 분이 작년에 꽃씨도 보내주셨는데, 작년에 그 꽃씨를 애지중지 키웠는데 싹도 안났다.  올해 그 꽃씨를 흙날림 방지용으로 털털 털어넣고 심었는데 조금 자라고 있다.  문제는 마음을 비우고 털털 털어넣어서 자라봐야 무슨 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봉선화도 내년에 마음을 비우고 털털 털어넣으면 자라려나.

어쨌든 올해 발코니 프로젝트는 좀 망한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뭘 심어야하는데 Covid-19으로 때를 놓친 것 같다는 핑계.  내년에 새 마음 새 뜻으로 잘해봐야지.  그때는 Covid-19이 썩 물렀기를 바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