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2791days] VE day 그리고 Stay Alert - 영국 학교 부분 등교 재개

토닥s 2020. 5. 11. 09:01

5월 영국은 두 개의 공휴일이 있다.  Early May Bank Holiday와 Spring Bank Holiday.  보통 5월 첫번째 월요일과 마지막 월요일이 공휴일인데, 올해는 첫번째 월요일로 잡혀 있던 공휴일을 5월 8일로 옮겼다.  75주년 VE day와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미 달력까지 인쇄된 뒤 공휴일이 변경된터라 우리집 달력엔 5월 4일이 공휴일이다.  VE day는 Victory in Europe의 줄임말로 세계2차대전 종전에 합의한 날이다.  VJ day, Victory over Japan도 있는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8월 15일이다. 

학교가 휴교를 해서 집에서 보내고 있고, 공휴일이라도 Covid-19 때문에 집에서 보내야하는데 매일매일 구글 클라스룸을 통해 해내야 하는 누리의 과제가 없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이 VE day가 단비 같았다.  그런데, 공휴일에도 과제를 내신 선생님.  선생님, 왜 이러세요.  9가지 과제 중에서 하고 싶은 걸 골라서 하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 우리는 3가지를 했다.  8일 아침, 누리는 일어나자 말자 모아놓은 재활용 빈박스들을 꺼내서 번팅을 만들었다.  낮에는 전통적인 디저트인 빅토리안 스펀지 케이크를 만들었고, 저녁엔 여왕의 VE day 메시지를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 누리는 온라인으로 폴란드 주말학교와 스카우트에 출석(?)했다.  불쌍한 누리, 휴교해도 월화수목금토 생활을 한다.



일요일,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고 지비는 지비대로 할 일이 있어 누리에게 혼자서 시간을 보내보라고 했다.  소파에 누워 심심해 심심해를 반복하다, 내 옆에 와서 심심해 심심해를 반복하고.  이 두가지를 다시 반복해도 내가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으니 하라고 펼쳐놓은 폴란드 주말학교 숙제도 손만 잠시 댔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가서 한참 조용하다.



가까이 가서보니 이러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본업인데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려니 쉽지는 않다.  특히나 이곳 아이들은 사계절 내내 비만 안오면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라, 사실 영국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비 입고 아이들과 잘 다닌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굽고 잘 먹는다고, 놀아본 이곳 아이들이 집에서도 시간을 잘 견디는 것 같다.  직장문화가 한국과 같지 않아서 부모들이 대부분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힘들지만 더 양질의 시간을 보낸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리고 내가 본 페이스북 뉴스의 댓글들을 대부분 학교 등교 재개를 반대하는 편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육아 때문에 힘들고, 학업이 걱정되서 학교 등교를 원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장문화가 이곳과 같지 않아 아이들만 두고 일터로 가야하는 부모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한국은 비교적 통제가 되니 거기에서 나오는 믿음이 있는 것도 알겠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종교시설과 맞먹는 집단시설이다.  한국보다 더 강하게 통제한 싱가폴도 휴교를 풀었다가 2주만에 다시 휴교했다.  조금 더 시간을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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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영국총리가 발표를 했다.  Stay at home에서 Stay alert으로 Covid-19 대응을 바꾼다고 했는데, 사람들 반응은 그게 뭔데 하는 식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하면 지속하고, 출근을 해야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라고(?).  우리의 관심사는 학교였는데, 6월 1일에 유치원 격인 리셉션, 초등 1학년 과 6학년만 등교를 재개한다고 한다.  리셉션과 초등 1학년의 등교 결정은 부모의 육아부담을 덜어주고 일로 돌아가기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초학습의 결정적 시기라서 그렇다는 의견이 있다.  누리 학교도 구글 클라스룸 학습이 초등 2학년부터다.  그보다 어리면 아이가 학습을 하는게 아니라 부모가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초등 6학년은 중등학교로의 이전을 준비해야하는 시기라서 또 중요성이 있다.  학부모들은 형제자매 중에 한 명이 등교 해당학년이면 나머지를 돌봐야하니 일터로 돌아가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고, 가족내 감염 위험 또한 높아지니 반대 목소리가 높다.  학교를 제외하고 별다른 변화와 전략이 없는 총리에 발표를 두고 사람들이 비난하지만, 이 Covid-19에 대해서 누가 정확한 예측과 전략을 꺼낼 수 있겠나 싶기도 하다.  물론 그걸 책임있게 해야하는 게 정부의 몫이기는 하지만.

그 발표를 듣고 누리가 실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내일이면 주문한 어린이 마술 세트, 수도쿠 책, 스티커 책이 도착할꺼라며 기뻐하며 자러 갔다.  이 Covid-19 상황에 아이가 아이라서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