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keyword] Racism - 인종차별주의

토닥s 2020. 4. 18. 04:15

#03 COVID-19 그리고 나


한국 살아도 차별받을 수 있다.  여성이라서, 아이 엄마라서, 지역출신이라서, 직업 때문에, 경제적 지위 때문에.  외국인으로 산다는 건 거기에 당연한 차별 요인을 하나 깔고 살아가는 것이다.  십 년 가까이 살면서 인종차별과 관련해 이런저런 경우를 보고, 듣고, 겪기도 했지만 별로 무게를 두지 않았다.  너무 흔한 일이라 그렇기도 하고, 대응하기도 피곤하기도 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인은 내가 험한 경우를 안당해봐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말도 사실이다.  

런던은 영국의 중심이지만, 영국과는 다른 곳이다.  지구상 런던과 같은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다양성과 관련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세심하게 배려한 정책과 제도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다시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후진 문화와 의식이 존재한다.  그 런던에서도 내가 사는 곳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고 비교적 조용한 주택가라 인종차별을 내가 사는 동네에서 당할 일은 잘 없다.  아니면 내가 그 동안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지인의 말을 듣고 나를 다시 돌아보니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물건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 물건만 생각하고 간다.  지비는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어쩌고 그러는데, 나는 길에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만 생각하고 간다.  그래서 나를 향한 불편한 시선은 느낄 사이가 없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최소한 노력한다.  그리고 순간을 마주해도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천성이 방글방글 밝고 착한 사람은 아니라서 나에게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 때문에 어려운 경우를 당하지 않았는지도, 혹은 영어가 깊지 않아 얇은 뉘앙스를 집어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단순하게 내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도 곱씹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2월 중간 방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그날 할 일을 마치고 급하게 누리를 데리러 가고 있었다.  일을 마친 곳이 같은 동네라하긴 그렇고 누리 학교에서 걸어서 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보통 걸어서 다닌다.  누리의 학교로 가기 위해선 한 중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지나가야 한다.  중등학교도 하교 시간이 지난 때라 길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가 가야할 방향쪽으로 3명의 남학생이 다른 한 명의 남학생을 상대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그 한 명의 남학생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다른 3명을 피해 길 이쪽저쪽 걷고 있었다.  '이건 뭐하는 시츄에이션인가?'하며 생각하며 나는 계속 걸었다.  나머지를 피해 걷는 남학생이 길 이쪽저쪽을 걷다보니 내가 그 3명과 1명 사이를 가로질러 가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들에게서 5미터쯤 멀어졌을 때 내 뒤에서 '차이나' 어쩌면서 '콜록콜록'하더니 자기들끼리 웃었다.  그때 나는 벌써 그들에게서 10미터 멀어졌다.  딱 2초 생각했다.  '되돌아가서 뭐라고 해주어야 하나?"  그 사이 나는 15미터 멀어졌다.  시계를 봤다.  누리 학교까지 15분을 걸어가야 하는데 10분 조금 더 남았다.  누리가 방과후 보육에 넘겨져 13파운드의 과태료를 내는 걸 감수하고 대응해야하나 생각하다, 저 아이들이 그만큼의 값어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뛰듯이 걸어 누리를 데리러 갔다.


집에 와서 지비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왜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말 안했냐"고.  내가 중국인이면 그래도 되는건가,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답해줬다.  그러고나서 며칠 뒤 대구 신천지 Covid-19 확진자 폭증 상황이 벌어졌다.  그 아이들의 행동이 대구 상황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면 내가 할말이 없는건가.  그게 아니지.  

그 일이 있고나서 중간방학 동안 그 학교에 메일을 쓸까 생각을 했다.  내가 경험했던 일을 알려주는 것만이라도 의미가 있을까.  그 학생들이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메일을  쓰지 않았다.  사실 영어로 이런 일을 써내려 가는 일이 나도 피곤타.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후회의 농도는 옅어졌지만, 후회는 오래갔다.


+


유럽에서 Covid-19이 확산되면서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마스크를 보내줄까 하고 물어왔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마스크 값보다도 배송료가 너무 비싼걸 알기에 받지 않는다고 했다.  배송료가 공식적인 이유였지만, 마스크를 썼을 때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인종차별 상황이 걱정 되기도 했다.  물론 그로부터 한 두 주가 지나서 마스크가 곧 필요한 때가 올꺼라는 생각에 한국의 가족들에게 부탁해 면 마스크 몇 개를 받았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고맙..



어제 런던 시장은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스크 착용이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감염의 가능성을 줄여주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현재 의료인에게도 부족한 마스크가 일반인들에게 의무화 되었을 때 부족현상을 감당하기 어려워 아무도 꺼내지 못했던 방법이다.  두 달여만에 이렇게 변하는 세상을 보니 놀랍다.  아시아인들이 쓴 마스크가 사회적 따돌림의 표적이 됐던게 언제인데-.  




전 지구가 Covid-19을 걱정하는 시기가 되서, 마스크를 인종차별 걱정없이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안든다.  Covid-19는 이제껏 우리가 마주한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니까.  지금은 어렵지만, 현대 의학이 언젠가는 이 Covid-19 난국에서 우리를 구원(?)해주리라 믿는다.  믿고 싶다.  하지만 이 어려울 때 드러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 - 공공의료의 부실함, 정보격차, 제조업과 농업의 중요성, 사회안전망의 중요성, 정치인들의 무능함, EU와 WHO 같은 연합 조직들의 나약함 그리고 차별주의는 어떻게 해결하나?  Covid-19은 우리가 눈 감고 있었던 현실을 극대화시켜 보여준 셈이다.  Covid-19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으니, 답하는 건 우리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