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2708days] 쉼 없이 자란다.

토닥s 2020. 2. 18. 09:17

누리가 봄학기 중간방학을 맞아 '꼼짝마' 중이다.  날씨까지 궂어서 집에서 '다함께 꼼짝마'하고 있다.



어제 점심으로 피자를 만들어 먹고, 커피를 마실 즈음 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누리는 피자반죽도,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는 일도 모두 자기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내가 뭔가를 만들 낌새를 보이면 열일을 밀어두고 달려온다.  사실 우리집이 달릴만큼 넓지는 않지만.  이제 피자반죽은 분량대로 재료만 준비해주면 차례대로 척척 잘한다.  "올리브 오일도 넣어야지?"하면서.  배추도 적은 량의 소금을 꼼꼼히 잘 뿌린다.  매워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양념장을 버무리는 일을 꼭 하고 싶어한다.  아이용 위생장갑을 한 두 해전에 한국서 사왔는데, 별 쓸 일이 없다가 요즘 열심히 쓰고 있다.

사실 일이야 혼자서 후다닥하는 게 훨씬 빠르다.  그런데 누리가 즐기니 그냥 통째로 넘겨준다.  물론 옆에서 지켜봐야하기는 하지만.  누리가 배추에 소금을 뿌리는 동안 그 옆에 앉아서 나는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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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가 태어나고 한국에 갔을 때, 이전에 일로 알던 지인이 육아가 힘들지(또는 지겹지) 않냐고 물었다.  십년이 다되어가지만,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지인이 보기에 아이와 절대적인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육아가 나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분도 오래 안 지인인데, 사실 나를 잘 몰랐던가보다.  사실 나 집순이인데-.  하는 일이, 하고자 했던 일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끌었을뿐인데 말이다.  하여간, 그 분의 질문에, "어차피 쉬어가는 거 잘 충전하겠다"고 했던 것 같다.  나도 그때 육아의 실체를 몰랐나보다, 쉬어가다니?!  바닥까지 신체적 에너지와 정신적 자산을 탈탈 털어내야하는 일인데 말이다.

요즘 내가 아이를 대하면서, 육아를 하면서 가지고자하는 마음이 그때 했던, 육아의 실체를 모르고 했던 대답과 같다.  어차피 빨리 갈 수 없는 것, 마음 졸이지 말고 이 순간도 충전하며 가자.  아이 손에 뭔가를 맡겨두고 옆에서 마음 졸여도 소용없다.  나만 손해다.  아이에게 맡기고, 그 덕에 나도 커피를 마시는 게 남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누리가 6~7살이나 됐으니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자라는 건 모든 부모가 기대하고 고대하는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빨리 자라서 아쉽기도 하다.  어쩌면 아쉽다기보다, 더 자라서 내가 새롭게 마주할 질문들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 따라, 나도 자라면 언젠가 닥칠 질문과 문제들이 갑작스럽지 않으려나.  아이가 태어나고 기저귀를 어떻게 갈지 몰라 감히 간호사를 불렀다.  우리는 너무 미안해했고, 간호사인지 조산사인지는 괜찮다고 했다.  그랬던 기저귀 갈기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가 마스터하게 된 것(?)처럼 아이의 성장도 마스터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물론 아이가 자라는 건 기저귀 가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서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내 마음이라도 잘 다스려지면- 하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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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집안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놀다가 결국은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를 차렸다.  그러다가 그 가게가 갑자기 미용실이 됐다.  인형 머리를 빗겨보고, 묶어보고 하다가 땋는 걸 가르쳐달란다.   인형 머리는 짧아서 연습이 안된다기에 손수건 세 개를 묶어줬다.  견습 미용사들이 사용하는 상반신 인형 같은데 조금 작은 상반신 인형에 머리모양 만드는 장난감이 있던데, 그런게 왜 있나 싶었더니, 그게 필요한 나이가 있나보다.  누리가 바로 그때.  다음 놀이 단계는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지금은 내 머리만 주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네.  누리 이모야, 런던 올 때 머리 자르지 말고 길러 와. 얼른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