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2359days] 런던의 아이들

토닥s 2019. 3. 5. 10:05
지난 주 누리 학교에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모든 아이들은 모든 문화의 대사/대표" 그런 행사가 있었다.  하루 행사가 아니라 주간 행사였다.  처음 이틀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배우고, 학년별/학급별로 서로 다른 전통춤을 배웠다.  자원자가 있는 학급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은 학부모들을 초대해 이틀 동안 배운 춤을 보여줬다.  이 행사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진행되서 고학년은 어떤 춤을 추었는지 모르겠지만, 누리 학년인 1학년은 브라질 춤, 2학년은 오스트리아 춤, 3학년은 인도 펀자브 춤을 췄다.    마지막 날은 전통의상이나 국가를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아이들이 등교했다.  그리고 이 날은 Cultural breakfast라는 이름으로 학부모들이 보낸 전통음식을 나눠먹는 행사를 학급별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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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학교가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모르긴 몰라도 영국 대부분의 학교가 이런 행사를 할 것이다.  영국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1/3이 부모 중 한 명이 영국 밖에서 태어났다는 통계가 있다.  이 말은 그 한쪽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영국인인데 영국 밖에서 태어난 경우도 포함된다.  보수당의 유명정치인인 보리스 존슨도 미국에서 태어났다.  물론 부모는 영국인.
1/3이라는 수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런던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2/3가 부모 중 한 명이 영국 밖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행사는 사회화와 통합의 차원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 https://fullfact.org/immigration/parents-born-outsid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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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작년 친구 결혼식 때문에 산 한복이 있어서 한복을 입고 갔다.  지비는 더러워지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지만, 비싼 한복도 아니고(사실 한국서 여기로 오는 배송료가 비싸긴 했지만) 벌써 작아져 더는 못입을 것 같아서 마음껏 입으라고 했다.  작년에도 이 비슷한 행사가 있어 벌써 한 번 입고 간 경험이 있다.  전체조회 때만 입고 벗을 줄 알았더니 하루 종일 입고 급식도 먹고, 운동장에서 놀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이에게는 한복이나 겨울왕국의 엘사 옷이나 마찬가지인 드레스일뿐.

Cultural breakfast에 나는 시간도 없고, 한국음식 중 아이들이 손으로 집어먹을만한 마땅한 요리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딸기를 준비해서 보냈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 - 주로 외국인 엄마들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왔다.  파키스탄 엄마는 인도 디저트를, 브라질 남편을 둔 영국 엄마는 포르투칼식 에그 타르트르 미니 사이즈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재료(토마토, 소세지, 버섯)를 넣은 키쉬를, 이라크 엄마는 전통 패스트리를 보냈다. 한 프랑스 엄마는 바게트에 치즈를 넣어 보냈고 다른 프랑스 엄마는 한국에서도 잘 아는 본 마망 마들렌을 보냈다.
어린이집, 리센션을 겪어보니 영국 엄마들이 이런데 참 약하다.  왜 영국이 요리의 불모지겠는가.  앞서 언급한 한 엄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트에서 산 컵케이크, 달달구리 디저트를 보냈다.

하교길에 누리에게서 듣자하니 오전에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쉬앤칩스 금요일 급식을 거의 안먹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한복을 입었더니 한복 쭈글쭈글 꼬질꼬질.. 작아져서 올 여름에 가서 새 한복을 사야겠다고 했더니 똑같은 한복 큰 사이즈로 사달라는 누리.  그렇게 좋아하고 즐겼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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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인터내셔널 데이에 한복을 입었기 때문에 공평하게 이번엔 폴란드를 상징하는 옷을 입혀서 보내려고 했다.  폴란드 전통의상은 수공업으로 만든 경우가 많아 비싸고, 그래서 대대로 물려 입는 경우가 많다고.  주변에 아이들 중 폴란드 전통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엄마들이 입던 옷이다.  우린 그런 게 없으니 축구티셔츠를 살까, (나이키에서 나온 것이라)비싸긴 하지만 평소에 운동복으로도, 여름 옷으로도 쓸 수 있으니 사자고 지비랑 식탁 너머로 이야기 나눴다.  문득 누리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옷 입을꺼냐, 폴란드옷 입을꺼냐고 물었더니 한국옷 입는다는 누리.  지비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이키 티셔츠 안사도 된다는데서(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데서) 위안을 찾았다.  나는 국가주의 를 경계하는 사람이고, 지비는 혹여나 해코지 당할까 국가를 상징하는 옷을 입지 않는다.  지비도 (그 나이키 축구 셔츠)하나 사서 한국 휴가 중에만 입었다.  월드컵 때랑.  그래서 누리에겐 폴란드를 상징하는 옷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 폴란드에 가게되면 하나 사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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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평소에도 누리는 "우리집엔 두 명의 한국사람, 한 명의 폴란드사람. 두 명의 여자, 한 명의 남자"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누리가 한국을 좋아하니 나도 좋고.  물론 누리에게 '한국=휴가=할머니&이모들&이모부=내 맘대로' 이런 공식이 있어 그런 것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