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life] 육아와 가사의 딜레마

토닥s 2016. 7. 7. 22:26
(참 뻔한 제목)

요즘 한국 가기 전부터 미뤄둔 집안일을 몰아 하고 있다.  별 일들은 아니고 누리 방을 만드는 일이 주된 일이다.
그러기 위해 그 방에서 짐을 빼 다른 곳에 넣어야 하고, 그 다른 곳의 짐은 또 다른 곳에 자리를 찾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짐이 한 번씩 자리만 옮길 뿐 모두들 자리를 차지하고 정리된 느낌은 없다.

틈틈이 그런 일을 하고 있으니 누리가 TV를 보는 시간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누리에게도 책을 옮기라, 장난감을 정리하라는 일거리 정도는 줄 수 있지만 일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내가 같이 해줘야 하는 판이라 TV앞에 방치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은 벨기에-프랑스 여행을 가기전 절반만 한 수건 삶기를 하는 동안 누리가 열심히 TV를 열심히 보았다.  보통 땐 이 시간에 체육수업이다 뭐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없어 TV에서 뭘 하는지 몰랐는데, 있어보니 누리가 평소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줄줄이.  TV앞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있다. 
빨래 삶기에 열심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좀더 나아져보자고 하는 일들에 시간을 빼앗겨 아이가 방치되면 이게 나은 것이 맞는 건가, 아닌건가.  그런 고민들을 누리 이유식 만들 때 했다.  이유식을 만든다고 주방에서 뒤돌아 도마에 코 박고 있으면 아이는 한참 동안 방치되는 사실에, 이게 과연 아이를 위하는 상황인가 고민하곤 했다.

속내를 따져보면 육아와 가사의 딜레마가 아니라 육아와 육아의 딜레마, 가사와 가사의 딜레마다.

과연 '중간점'은 어딜런지.

+

아무리 세제를 바꿔가며 빨래를 해도 점점 더러워만 지는 빨래.  특히 수건.  드럼식 세탁기라 아무리 빨래 후 문을 열어놓고 건조시켜도 곰팡이 같은 냄새가 있다.  드럼세탁기 청소 세제를 2~3개월에 한 번씩 돌려도 그렇다.  세탁기에서 하수로 연결된 호스에 고인 물이 호스에 곰팡이를 만든게 아닐까 싶은데.  빌트 인 세탁기라 뜯거나 꺼내보는 일은 감당이 안된다.
더군다나 수건은 두꺼워 가장 천천히 마르니 아무리 새로 지어져 습기가 없는 우리집이라도 집안에서 말린 빨래는 냄새가 난다.  한국에 가니 뽀송뽀송한 부모님집 수건.  오래되서 뻣뻣한 느낌이 있지만 간간히 삶고 햇볕에 말리니 뽀송뽀송.  영국에 돌아와 바로 수건을 모아 빨래하고, 가루 세제를 넣어 삶고, 다시 뜨거운 물로 빨래했더니 확실히 다르다.  같은 세탁기, 같은 곳에서 건조해도.

그런데 우리집엔 빨래를 삶을만한 것이 없어 가장 큰 냄비를 희생시켰다.  수건을 삶아보니 2개만 겨우 들어가는 냄비.  처음 3개 넣었다가 바로 넘쳐버렸다.  그러니 수건 12~14장 정도 한 번에 삶으려니 불 앞에서 한 시간.  그래도 달라진 수건을 기대하며 땀을 흘린다.

이렇게 아줌마가 되는구나.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