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367days] 측은지심

토닥s 2016. 6. 17. 04:58
누리는 열심히 일상적응 중인데, 별로 순조롭지는 않다.

월요일.  시간을 다 채우리라 기대하지 않고 환기 차원에서 어린이집을 갔다.  집을 나설때만 해도 즐거운 마음이었는데 도착해서 잠 온다고 울고불고.  여기 오후 1시면 불과 며칠 전 한국에서 오후 9시.  꿈나라로 갔을 시간이긴 했다.  반갑다고 달려드는 친구도 싫다, 선생도 싫다.  십여 분만에 우는 누리를 안고 돌아나왔다.  잠 온다고 울더니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공원 까페에서는 초롱초롱해져 한 시간을 보내고 비가 그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려던 내 욕심이 지나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차적응 만큼이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어려울거란 예감.

화요일.  누리가 좋아하는 체육수업을 갔다.  전날 어린이집처럼 집을 나설때는 가고 싶다 했지만 막상 수업이 진행되는 교회강당 입구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울고 불고.  선생의 제안으로 강당 한켠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지켜보기로 했다.  10분쯤 지나자 누리가 쭈뼛쭈뼛하고 싶어했다.  그렇게 슬며시 수업에 참여했다.

누리는 수업 중에 계속 나를 쳐다봤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선생들이 끊임없이 기구들의 구조를 바꾸는데 그걸 잠시 쳐다보고 있는 사이 내가 누리를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울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들은 강당 한가운데 놓인 담요 위에 앉아 선생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누리가 울자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누리의 옆머리를 귀뒤로 넘겨주는가 하면, 앞머리를 쓸어주며 달래주었다.  뭐라고 말도 하는 것 같았는데 어떤 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수업 마치고 그 아이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었는데 누리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서 화장실로 향하느라 기회를 놓쳤다.  다만 그 아이의 이름과 엄마가 누구인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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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누리가 바이러스성 장염에 걸렸을 때 어느날 누리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지비와 누리를 놀이터에 남겨두고 혼자 장을 보고 왔는데, 놀이터로 돌아오니 누리가 설사를 했단다.  집으로 바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가까운 가페에서 기저귀를 갈고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하였다.  그 때 지비가 들려준 이야기.

누리가 아이용 정글집(그물과 사다리로 이뤄져 아이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노는 기구) 주변에서 놀다 설사를 하니 놀란 마음에 굳은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았다고 한다.  그때 5살쯤 되어보이는 여자 아이가 다가와 누리 앞에 누리 눈높이로 쪼그리고 앉아 "are you OK?(괜찮니?)"라고 물었단다.
그때 지비가 다가가서 그 아이에게 누리가 아파서 그렇다고 설명해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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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어른들도 없는 측은지심 - 그 아이들은 어디서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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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비는 그 때 그 이야기를 하며 '이런 것들이'이 이곳에서 아이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고 했다.

"how are you doing?(잘 지내?)"
"are you all rihgt?(괜찮아?)"

영국에는, 이곳 영어에는 아주 형식적인 그리고 입에 붙은 인사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밥 먹었냐는 인사,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속이 빈 인사들쯤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영어표현들과 대화들이 사람들의 관계를, 사회를 좀더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도와준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이 없이 그냥 했던 말도 가끔 듣는 이에 따라서는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말로 들리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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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교보생명 앞을 지나다 건물에 매달려 유리창 청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 때 누리가 외쳤다. 

"아저씨! 위험해!"

아이들에겐 이런 마음이 있다, 우리에게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