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2016년 파리 Paris

[day0] 파리 파리 파리

토닥s 2016. 5. 4. 22:59

지난 월요일이 영국은 공휴일이었다.  긴 주말을 이용해서 파리에 다녀왔다.  이 여행은 그 이유가 변경되고, 변경된 경우였다.  누리와 같은 또래 아이를 두고 있는 Y님과 어느날, "파리 디즈니랜드 갈까?"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만 4세 이전에 가면 유로스타(런던-파리간 기차)도 무료고, 파리에 연고가 있는 친구가 자신의 거처에 머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좋다", "좋다"며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던 중 지비가 자신도 디즈니랜드 안가봤다며, 가고 싶다며.  그래서 Y님을 배신하고(죄송죄송.. 굽신굽신..) 결과적으로 지비와 가게 되었다.



그 이전에 누리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미국 여행을 하려고 했다.  결혼 5주년이라는 좋은 핑계가 있었으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니다, 한 가지 돈이 문제였다.  런던에서는 뉴욕이 가깝지만, 미국까지 가면 미국 한 가운데 살고 있는 친구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한 가운데는 한국의 대전격이 아니라는 점.  비행기로 몇 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규모다.  이왕 가는 거 샌프란시스코도 가보고, 시애틀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미국이라는 나라를 횡단하려면 돈이 문제였다.  물론 시간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서 소박하게 가까운 파리 여행을 결혼 5주년 기념 여행으로 '치기'로 했다.  미국은 결혼 10주년에 갈 수 있을까?  그 때는 누리 학교가 문제네.  일단 꿈이라도 꾸어보자.


파리는 지비와 따로도 가보고, 같이도 두 번을 갔다.  더 이상 관광지, 박물관, 미술관을 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디즈니랜드는 예외로 하자.  그래서 친구네에서 멀지 않은 퐁피두센터(현대미술관)을 가려고 방향을 잡았는데, 마음이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지난 번에 파리 여행을 다녀와서 TV에서 영화 "아멜리에 amellie"를 보며 "아 우리가 왜 저 생각은 못했을까!?"하며 후회했던 생각이 나서 나름(?) 영화 아멜리에를 테마로 잡고 영화의 장면에 나왔던 곳을 가보기로 정했다.  역시 북동쪽인 친구네와 그렇지 멀지 않다면서. 


여행을 떠나기전에 꼭 역에서 즉석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누리가 지하철 역마다 있는 기계를 발견하고 해보고 싶어했고, 2유로 동전을 넣고 찍어봤다.  5유로짜리 지폐만 믿고 사진을 찍었는데 잔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진 찍어놓고 역무원에게 달려가 동전을 바꾸어야 했다.  사진이 기념품으로 남았고, 메일 주소를 넣으니 이렇게 파일로도 받았다.




누리님을 위한 디즈니랜드, 정말 누리님'만'을 위한 것이었는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 볼 일, 그리고 영화 아멜리에의 장면을 찾아서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 이외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여행이었다.


3박 4일 일정에서 오고 가는 하루씩 빼고나면 이틀 간의 여행이 전부였지만 디즈니랜드가 생각보다 좋았다고 지비는 평가했다.  우리가 정작 디즈니랜드에 가서 뭘 했는지 풀어놓으면 웃을 일이지만, 특별하게 한 게 없다.

개인적으론 2000년 첫 배낭여행을 하면서 참 아쉬웠던 도시가 파리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달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 남겨두었다.  그 때는 파리 지하철의 지린내 마저도 울림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에 살면서, 유럽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파리에서의 울림은 차츰 사라졌다.  이번에는 '이 도시는 참 어렵다(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하루 이틀 관광객으로 거쳐가는 입장이라 설득력 있게 풀어내긴 어렵지만 느낌을 간단하게 적어보면 그랬다.

물론 이 생각은 누리가 자라고 나도 여유가 생겨 다시 파리를 찾게 될 일이 생기면 달라질꺼라 생각한다.  어제의 파리가 오늘과 같지 않은 것처럼, 내일의 파리는 또 다를테니.




작년부터 시작된 파리의 잇따른 테러를 보면서 '왜 파리?'라는 이야기를 지비와 많이 나누었다.  주로 무슬림인 북아프리카의 이민자들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영국이 인구가 적어서 그렇지 비율로 무슬림을 따지면 적지 않다.  되려 이민자비율은 영국이 많지 않을까 싶다. 두 국가는 제국주의 역사 또한 비슷하다.  영국에도 종교, 이민과 관련된 음영이 존재하지만, 프랑스처럼 깊지 않다가 내 생각이다.  영국은 제도가 그 음영을 줄이는데 많이 기여한 것 같다.  영국에선 인종차별을 비롯 모든 차별은 법정으로 가면 소수자가 승리하는 편이다.  프랑스는 홍세화 선생님의 책을 통해 우리 세대에겐 '톨레랑스/관용의 국가'로 다가왔던 국가다.  그런데 지금의 프랑스는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그 나라에 살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오늘이 그 누구나의 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왜 프랑스?'라는 생각이 잘 접어지지 않는다.  접어서도 안될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짧아서 농축적으로 즐거움과 우울함이 교차하는 여행이었다.  잘 풀어낼 능력은 없고,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다.  늘 그렇지만, 언제..(-ㅜ )



다른 건 접어두고, 도시의 많은 곳에서 에펠 타워가 보이는 파리의 전망만큼은 참 멋지다.   전망 그 자체로도 멋지지만, 그 전망을 남겨둔 시스템이 더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