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305days]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배운다.

토닥s 2016. 4. 15. 21:47
무엇인가를 아이에게 가르치기란 참 어렵다.  밥 잘먹기, 말하기 심혈을 기울여도(?) 참 생각만큼 따라와주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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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가 요즘 "leave it(그냥 둬)"라는 말을 지비에게 잘 한다.  어떤 상황이었던 간에 그 말이 별로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 말은 주로 지비가 누리가 원하지 않는 행동(장난감을 치워버린다거나 음식을 강요할 때)을 할 때 나온다.  그 말이 어디서 왔을까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내가 한 말이다.
누리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서 울게 되면 내가 지비에게 했던 말.  누리를 더 많이 겪으면서 생긴 나름의 방법은 동의와 설득이다.  장난감을 치워야 할 때 꼭 먼저 말한다.  "장난감 치운다", "장난감 치울래?", "장난감 치우자~".  지비는 그런 과정 생략하고 행동에 먼저 들어가니 누리가 운다.  그때마다 내가 했던 말이었다.

더 할 말이 없다 -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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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누리가 어린이집을 갈 때 스쿠터를 이용했다.  늘 시간에 쫓겨 유모차에 넣고 바쁘게 갔다.  하지만 언제까지 유모차 신세를 질 수도 없고, 유모차를 끌고 바쁘게 걷는 샛길이 나 혼자서도 가기 싫은 길이었다.  사무실들이 몰려 있는 뒷길이라 사람들이 늘 줄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고, 늘 동전을 구걸하는 두 명의 노숙자가 있다.  스쿠터를 타기에도 길이 험했다.  그에 비해 주택들이 있는 앞길은 스쿠터를 탈 수 있지만 약간 멀었다.  그래도 마음먹고, 이제 비도 적은 계절이니 스쿠터를 태워 앞길로 다니기로 했다.

다니지 않던 길을 가다보니 연이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와 엄마를 뒤따라 가게 되었다.  주택가와 차도를 지나 공원안에 들어서니 아이가 길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봄에 한창 피는 수선화(daffodil)을 하나 둘 꺾는다.  하나 둘에서 그치겠지 싶었는데 아이는 꺾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공원을 가로 지른다.  어이가 없었다, 나만.  그 엄마는 그 행동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빨리 가자고만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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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그 이전이다.  어린이집에서 간식으로 우유를 준다.  그런데 마시지 않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자유롭게 하나씩 들고 가기도 한다.  그 아이가 어린이집을 나설 때 우유를 들고 나섰다.  나는 누리를 유모차에 넣고 그 모자를 뒤따르고 있었다.  어린이집 옆 공원으로 들어설 때 아이가 마시던 우유팩을 망설이지 않고 공원 잔디밭을 향해 던졌다.  바로 3m 앞에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때도 그 엄마는 아무말하지 않고 아들을 잠시 보고 섰다 갈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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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를 버리고 공원의 꽃을 꺾어 버리기를 반복하는 아이의 행동은 부모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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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교육의 공간에 들어가니 내 아이만 잘 돌보고 가르치는 게 전부가 아니더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있으니.  그러면 내가 그 아이에게 한 마디 해야하는데, 아마 어린이집 내부였고 엄마가 옆에 없었다면 아이에게 말을 붙였을 것이다.
사실 그 엄마는 말을 붙이기에 좀 무서운 포스다.  "좀 그래.."라고 이 상황을 설명하니 지비가 "어떻다는 말이야?"하고 되묻는다.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여도 선명하지 않다.  하기 싫은 말이었지만 한 마디로 "look like people from estates"라고 말하니 지비가 이해한다.  한국말로 풀자면 '임대주택(소셜하우징)에 사는 사람'이다.  이 말에 불편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과 달리 영국에선 가난하다는 말이 거칠다는 말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슬프게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