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life] 세월호와 마주하기2

토닥s 2016. 4. 14. 22:07

런던 세월호 추모 집회에 갔다가 노란색 리본과 스티커를 받았다.  집회에 참여한 다른 분이 스티커 좋아하는 누리에게 준 것인데, 누리가 조물거리다 못쓰게 될 것 같아서 휴대전화 케이스에 붙였다.  만나는 한국사람이라고는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만나는 사람 정도가 전부니 그 어느 누구도 그 스티커에 대해서 묻지 않았고, 나도 그만큼의 의미를 두지 않게 됐다.


한국에 갔을 때는 달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스티커를 보고 한 마디 했다.  너무 큰 아픔이었고, 지금도 슬프고 화가 난다고.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겨울 한국에 갔다가 세월호 사건 후 일년 반이 흐른 시점에서 한국에 다시 간 것이라 한국에서 이 사고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관련 뉴스는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라는 게 사람들의 생각을 알기는 참 어려운 공간이다, 취향정도는 알 수 있지만. 


한국에서 만났던 한 후배 역시 휴대전화 케이스에 붙여진 스티커를 보고 그때의 울분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부산 경남 지역에선 그런 추모의 분위기도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공장소에서 본 것도 드물다고.  후배는 대학졸업 후 이전의 관계들과는 멀어져 혼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부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넘쳐나는 노란리본과 추모의 분위기가 그 밖 세상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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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와 내가 한국에 가고 3주 뒤 합류한 지비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갔다.  일년 중 가장 큰 경비가 들고, 가장 긴 시간이 드는 여행이 한국행인데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늘 지비의 볼 거리를 염두에 둔다.  어딜 가고 싶냐고 물으니 '홍대'에 가보고 싶다는 지비.  그래서 한국여행 중 여행으로 홍대를 넣어 한 3일간 머무르며 친구들도 만나고 구경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홍대앞에 있다는 '홍대어린이놀이터'를 찾아 홍대 대로로 나갔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노란 리본을 담아 나눠주고 있는 분을 만났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쉬어서 메마른 목소리에서 나는 그 분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일에 다들 즐거운 차림으로 다니는 대학가 앞에서 누가 저렇게 서있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휴가 중이었고 그 분은 뉘엿뉘엿 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뜨거운 햇살을 혼자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창하게 연설을 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세월호 리본이예요, 가져가세요", "아직 희생자들이 남아 있어요", "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 그런 짧은 말씀 몇 가지를 반복하고 계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해서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그 뒤로 찾아간 '홍대어린이놀이터'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사진과는 너무 달랐고, 차마 누리를 그곳에 놀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해서 바로 자리를 떠났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시던, 혼자서 뜨거운 햇살을 마주하고 계시던 분에게 음료수라도 한 병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자리로 돌아오니 안계셨다.  한참 동안 후회했다, 바로 그 분께 다가가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 병 드리지 못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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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걸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이 슬픔일 때는 더욱.  심지어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픔, 슬픔은 마음 속에 묻는 게 빨리 잊어버리는 게 미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서 얼마나 멀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슬픈 것은 슬프다 하고, 아픈 것은 아프다하고 드러내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사고는 슬픔이면서 아픔이었다.  그렇다고 묻어만 둬서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계속해서 이 사고를 기억해달라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가장 아픈 그분들이.